2004년 3월 17일 수요일

영원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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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어른이 되더라도 마음 속에서는 부모의 애정을 끊임없이 구하는 어린애와 같은 존재일 것"

 

동명의 원작 소설을 집필한 텐도 아라타는 제목의 뜻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사람은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었을때 진정 어른이 된다고들 말한다. 그리고 그제서야 자신의 부모에 대해서도 겨우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그러나 부모가 되어서도 어른이 되지 못하고, 그렇게 어른이 되지 못한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너무나 제한적이다. 아니, 차라리 제한적이기만 하다면 다행스러울 것이다. 부모가 입힌 상처로 뒤덮인 피투성이 아이들의 길고도 먼 인생을 과연 누가 구원해 줄 수 있을 것인가?

 

험준한 산을 어렵게 올라가는 한 소녀와 두 소년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보는 이를 힘겹게 한다. 무엇때문에 어른도 올라가기 힘든 그 산을 아이들이 올라가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산위에서 구원받길 바란다. 그러나 뒤따라온 어른은 너무나 쉽게 그들에게 충고한다. 신은 없다고. 구원따윈 환영이라고. 너희들이 본 신의 모습은 안개에 반사된 본인들의 모습일 뿐이라고. 높은 산보다도 험준한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아이들에 대한 암시였을까? 자연스럽게 그로부터 18년후로 넘어간 그들의 모습은 여전히 구원따윈 없는 힘겨운 일상의 연속일뿐이다. 그리고 우연한 재회로 묻어두었던 상처와 그로 인한 재앙이 그들에게 다가온다.

 

와타베 아츠로와 가장 잘 어울리는 여배우로 꼽히는 나카타니 미키, 그리고 매력남 시이나 킷페이가 함께 출연한 작품인 <영원의 아이>는 성적으로, 심리적으로 유린당한 세 아이의 18년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들이 받은 트라우마가 현재에 어떻게 되살아나고 극복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다. 원작 소설의 기본 구도와 그 영상화에 충실한 이 드라마는 그렇기 때문에 색다른 해석이나 스토리를 추가하지는 않는다. 대신 충격적인 논란거리가 될법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목을 받은 듯하다. 부인대신 딸을 육체적으로 사랑해버린 아버지, 문란한 엄마의 사생활때문에 스스로 성적 능력을 상실한 사내 아이, 아들을 저주하며 온몸에 담배빵을 놓은 엄마와 그 아들. 과연 이것이 도덕적, 선정적인 문제를 일으킬만한 '설정'에 불과한 것일까? 누군가는 한국에서 이런 드라마는 절대로 제작될 수 없을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어디에선가 이런 일들은 분명 벌어지고 있을 것이며, 심심치않게 다뤄지는 신문 기사는 그 문제의 본질을 떠나 그것을 바로 '선정적'인 사건으로 만들어버린다. 다행히도 이 드라마는 원작 소설의 탄탄함을 빌어 본질의 심각성을 훼손하지 않는데 성공하고 있다고 본다. 12회에 걸치는 동안 보는내내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괴로웠다.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여전히 어렵다. 끝내 그들은 타인으로부터 어떤 구원도 받지 못했다. 어깨를 걸친 세 사람끼리도 각자를 구원하는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타인으로부터가 아닌 자신의 마음속으로부터 나오는 구원의 손길을 스스로에게 뻗기 전에 너무 많은 희생이 따르고 말았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인가?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입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전에 또 다른 타인에게 상처를 입힐 수 밖에 없는 그런 것.

 

여리고 위축된 모습으로 상처받은 내면을 감추는 나가세 쇼이치로 역의 와타베 아츠로, 과감히 뒷모습 누드를 공개하고,  격정적인 장면에선 눈물, 콧물 가릴 것없이 흘려가며 배역에 몰입한 아리사와 료헤이 역의 시이나 킷페이, 가장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구사카 유키 역의 나카타니 미키, 이 배우들의 호연과 더불어 그들보다 더 고생하고 더 힘들었을게 분명한 세 아역배우들이 있었기에 이 드라마가 완성될 수 있지 않았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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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 배우와 어른 배우들

 

 

익시드 - I will


< 출처 : 헤롱이네 일드 블로그 >

 

ps. 포스터와 사진은 낑아님의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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