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눈동자에서
내 것과 같은 슬픔을 발견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없길 바라요
마지막 보내는 길에서
우리가 함께한 슬픔은
이제 마음 한구석에 묻어두고
다시 꺼내게 되지 않길 바라요
잘가세요
저 먼곳에서
예전처럼 그렇게 웃으며
변함없이 지켜봐주시길 바라요
다른 사람의 눈동자에서
내 것과 같은 슬픔을 발견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없길 바라요
마지막 보내는 길에서
우리가 함께한 슬픔은
이제 마음 한구석에 묻어두고
다시 꺼내게 되지 않길 바라요
잘가세요
저 먼곳에서
예전처럼 그렇게 웃으며
변함없이 지켜봐주시길 바라요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사도행전 5장 20절)
분노를 가슴에 품지 말고
응어리진 마음이
모진 시대를 깨우는 노래가 되게 하라
부스러지도록 연약한
한마리 나비되어
떠난 자의 슬픈 울음을 허공에 뿌리지 마라
깨어나라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생명을 전하라
눈물로 싹을 틔우고
흘린 그 피가 되살아나
큰 나무로 자라 우거질때까지
깨어나라
네 바라보는 곳은 이 땅이 아니지만
네 선 곳은 이 땅이니
그 곳은
사람 사는 세상이라
<영정에 날아든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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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못사는 집안에 태어난 것도 아니고
살면서 핍박을 느껴본 적도 없지만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태생적인 거부감이 있다. 누가 보면 내가 바로 그 기득권층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노무현이란 사람은 한때는 내가 택한 내 편이었지만
왠지 대통령이란 권좌에 오르면서는 더이상 내 편이 아니었다.
그렇게 느꼈다. 누군가 그렇게 느끼도록 만든 것에
말려들어간 것이란 말은 안하고 싶다.
어쨌든 지나간 날들동안 나는 그 사람과 완전히 멀어졌고
이라크 파병, 한미 FTA등을 통해서는 아예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노무현이 얼마나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했는지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그가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했던 세상의 모습이
어떤것이었는지 알려고도 해본적이 없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야
이렇게 미안하다. 너무 미안하다.
떠난 자는 말이 없고 살아 있는 자가 떠안는 부채감이 무엇인지
살면서 처음 깨닫는다.
천국 소망을 가진 기독교인이
천국을 바라보며 그곳에 뜻을 두고 사는 일생을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날이 올때까지 일생을 보낼
이 땅위에 당연하다는 듯이 만연한 불의와 부정, 불평등을
함구하는 것 또한
나라는 생명을 이 땅위에 심어주신 분의 은혜와
태어나게 해주신 이유에 대한 책임회피 아니겠는가?
사람이 사람답게 한 평생을 보내다 갈 수 있는 땅
그 땅은 거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겠지.
머리로만, 머리로만 안다고 말했던 순간들에 대해
회한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시청앞광장에 나가고
영정앞에 국화를 올렸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죄악을 범했을리가 없음을 굳게 믿는다.
잃고 난 후에 아쉬워 하면 무엇하랴.
하지만 그를 잃고 나는 더 소중한 무언가를 받았다.
그리고 그것이 비단
나하나에게만 국한 된 일이 아니란 것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이 땅에 뿌려진 그의 핏자욱이
헛되지 않을 것임을,
그렇게 되기를 확신하며 간절히 기도한다.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피기는 쉬워도 아릅답긴 어려워라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사람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언 강 바람속으로 무덤도 없이세찬 눈보라속으로 노래도 없이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가라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되리니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가라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사람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언 강 바람속으로 무덤도 없이세찬 눈보라속으로 노래도 없이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가라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되리니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가라그대 잘가라...그대 잘가라...
<부치지 않은 편지 _ 김광석>
사실 당신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어린아이같이 단순하게 희망에 부풀어서 당신에게 한 표를 던졌습니다.
적어도 당신은 그전에 보아왔던 그 사람들과 다를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죠.
이 땅에서 그렇게 긴 세월을 살아 온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내 삶이 그렇게 온갖 것들에 대해 분루를 삼켜야할 만큼 비참했던 것은 아니지만
분명 우리는 벗어나지 못했고, 벗어날 수 없었던 좋지 못한 멍에를 짊어지고 있으니까요.
어떻게든 달라지길 바랐고, 누군가 앞서서 그 길을 향해 뛰어주길 바랄때
20년동안 국민들의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당신이 나타나주었습니다.
하지만 기대와 환호는 잠시뿐이었고,
당신의 행보가 그 길에서 어긋날때마다 우리는 실망하고 또 한없이 실망했습니다.
결국 나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뿐 아니라 심지어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내 속에 당신은 몇몇가지 일로 인해 변절자로 남게 되었고
누구나 '자리'에 앉으면 다 똑같아 진다고
그렇게 말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버스를 타고 유유히 시골로 떠나갈때
나는 당신을 다시 한 번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누구에 대한 반감때문이기도 했지만
권좌에서 홀연히 발걸음 가볍게 떠나는 그런 모습을
이전에는 한 번도 본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마을 연단위에서 소리쳤죠.
이제 시원하다고.
이제 시원하다고.
그런데
처음엔 누구보다 아름답게 떠난 사람이
왜 결국 누구보다 슬프게 간 사람으로 남았나요.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나요?
무엇을 원했던 건가요?
당신은 스스로 혼자만의 안위를 위해 그런 선택을 할만큼
작아져있었던건가요?
아니면 당신이 그런 선택을 하기를
누군가 원했던건가요?
이제 당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또 우리는 들을 수 없겠지만
이 세대에 남겨진 슬픔은 한동안 가시지 않을겁니다.
떠난 당신이 우리에게 던져주고 간 질문은 너무도 큽니다
해답을 찾을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시대의 아픔 따위의 말은 이제 없어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으로 인해 나와 우리 가슴에는
큰 생채기가 남았습니다.
다시 한 번 당신이 미워지려고 합니다.
하지만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억누르고 아랫입술을 깨물고
당신이 미워지지 않게 버티고 있습니다.
부디 이제는
아픔도 고통도 없는 곳에서
편안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