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30일 토요일

마지막 보내는 길에서

다른 사람의 눈동자에서

내 것과 같은 슬픔을 발견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없길 바라요

 

마지막 보내는 길에서

우리가 함께한 슬픔은

이제 마음 한구석에 묻어두고

다시 꺼내게 되지 않길 바라요

 

잘가세요

 

저 먼곳에서

예전처럼 그렇게 웃으며

변함없이 지켜봐주시길 바라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9년 5월 28일 목요일

깨어나라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사도행전 5장 20절)

 

 

분노를 가슴에 품지 말고

응어리진 마음이

모진 시대를 깨우는 노래가 되게 하라

 

부스러지도록 연약한

한마리 나비되어

떠난 자의 슬픈 울음을 허공에 뿌리지 마라

 

깨어나라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생명을 전하라

 

눈물로 싹을 틔우고

흘린 그 피가 되살아나

큰 나무로 자라 우거질때까지

 

깨어나라

 

네 바라보는 곳은 이 땅이 아니지만

네 선 곳은 이 땅이니

그 곳은

 

사람 사는 세상이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정에 날아든 나비>

 

---

 

나는 그렇게 못사는 집안에 태어난 것도 아니고

살면서 핍박을 느껴본 적도 없지만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태생적인 거부감이 있다. 누가 보면 내가 바로 그 기득권층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노무현이란 사람은 한때는 내가 택한 내 편이었지만

왠지 대통령이란 권좌에 오르면서는 더이상 내 편이 아니었다.

그렇게 느꼈다. 누군가 그렇게 느끼도록 만든 것에

말려들어간 것이란 말은 안하고 싶다.

어쨌든 지나간 날들동안 나는 그 사람과 완전히 멀어졌고

이라크 파병, 한미 FTA등을 통해서는 아예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노무현이 얼마나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했는지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그가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했던 세상의 모습이

어떤것이었는지 알려고도 해본적이 없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야

 

이렇게 미안하다. 너무 미안하다.

 

떠난 자는 말이 없고 살아 있는 자가 떠안는 부채감이 무엇인지

살면서 처음 깨닫는다.

 

천국 소망을 가진 기독교인이

천국을 바라보며 그곳에 뜻을 두고 사는 일생을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날이 올때까지 일생을 보낼

이 땅위에 당연하다는 듯이 만연한  불의와 부정, 불평등을

함구하는 것 또한

나라는 생명을 이 땅위에 심어주신 분의 은혜와

태어나게 해주신 이유에 대한 책임회피 아니겠는가?

 

사람이 사람답게 한 평생을 보내다 갈 수 있는 땅

그 땅은 거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겠지.

머리로만, 머리로만 안다고 말했던 순간들에 대해

회한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시청앞광장에 나가고

영정앞에 국화를 올렸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죄악을 범했을리가 없음을 굳게 믿는다.

 

잃고 난 후에 아쉬워 하면 무엇하랴.

하지만 그를 잃고 나는 더 소중한 무언가를 받았다.

 

그리고 그것이 비단

나하나에게만 국한 된 일이 아니란 것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이 땅에 뿌려진 그의 핏자욱이

헛되지 않을 것임을,

그렇게 되기를 확신하며 간절히 기도한다.

 

2009년 5월 25일 월요일

그대, 잘가라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피기는 쉬워도 아릅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람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 강 바람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가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람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 강 바람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가라

그대 잘가라...

그대 잘가라...

 

<부치지 않은 편지 _ 김광석>

 

사실 당신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어린아이같이 단순하게 희망에 부풀어서 당신에게 한 표를 던졌습니다.

적어도 당신은 그전에 보아왔던 그 사람들과 다를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죠.

이 땅에서 그렇게 긴 세월을 살아 온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내 삶이 그렇게 온갖 것들에 대해 분루를 삼켜야할 만큼 비참했던 것은 아니지만

분명 우리는 벗어나지 못했고, 벗어날 수 없었던 좋지 못한 멍에를 짊어지고 있으니까요.

 

어떻게든 달라지길 바랐고, 누군가 앞서서 그 길을 향해 뛰어주길 바랄때

20년동안 국민들의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당신이 나타나주었습니다.

하지만 기대와 환호는 잠시뿐이었고,

당신의 행보가 그 길에서 어긋날때마다 우리는 실망하고 또 한없이 실망했습니다.

 

결국 나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뿐 아니라 심지어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내 속에 당신은 몇몇가지 일로 인해 변절자로 남게 되었고

누구나 '자리'에 앉으면 다 똑같아 진다고

그렇게 말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버스를 타고 유유히 시골로 떠나갈때

나는 당신을 다시 한 번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누구에 대한 반감때문이기도 했지만

권좌에서 홀연히 발걸음 가볍게 떠나는 그런 모습을

이전에는 한 번도 본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마을 연단위에서 소리쳤죠.

이제 시원하다고.

이제 시원하다고.

 

그런데 

처음엔 누구보다 아름답게 떠난 사람이

왜 결국 누구보다 슬프게 간 사람으로 남았나요.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나요?

 

무엇을 원했던 건가요?

당신은 스스로 혼자만의 안위를 위해 그런 선택을 할만큼

작아져있었던건가요?

아니면 당신이 그런 선택을 하기를

누군가 원했던건가요?

 

이제 당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또 우리는 들을 수 없겠지만

이 세대에 남겨진 슬픔은 한동안 가시지 않을겁니다.

 

떠난 당신이 우리에게 던져주고 간 질문은 너무도 큽니다

해답을 찾을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시대의 아픔 따위의 말은 이제 없어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으로 인해 나와 우리 가슴에는

큰 생채기가 남았습니다.

 

다시 한 번 당신이 미워지려고 합니다.

 

하지만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억누르고 아랫입술을 깨물고

당신이 미워지지 않게 버티고 있습니다.

 

부디 이제는

아픔도 고통도 없는 곳에서

편안하길 바랍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9년 5월 15일 금요일

2009년 5월 13일 수요일

[스크랩] MB는 대통령인가, 전경련 회장인가 - 노동유연화 발언

MB는 대통령인가, 전경련 회장인가 - 노동유연화 발언 (미디어오늘 박상주 논설위원)
 
도대체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인가, 아니면 전국경제인연합회회장인가? 친기업·반노동의 속내를 드러내는 대통령의 발언 수위가 상식의 궤를 넘어서고 있다. 대통령의 사돈인 조석래 전경련 회장의 입에서나 나올 법한 말들이 대통령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난 7일 정부과천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대통령은 “노동유연성 문제는 연말까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국정 최대 과제”라고 말씀하셨다. 대통령은 “과거 외환위기 때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점이 크게 아쉽다”며 “이번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노동유연성 문제를 개혁하지 못한다면 국가 경쟁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셨다.

대통령의 말씀처럼 정말로 우리나라 노동시장 유연성에 문제가 있는 걸까? 조사 기관에 따라 극과 극의 결과를 내놓고 있다. 세계은행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노동시장 유연성은 2005년 127위, 2006년 110위, 2007년 131로 OECD 선진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꼴찌 수준이다. 반면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2004년 자신의 저서 ‘노동시장 유연화와 비정규직 고용’을 통해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이 OECD국가 중 1위를 달리고 있다는 정반대의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왜 이처럼 얼토당토않은 극과 극의 결과가 나왔을까. 김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김 소장은 “세계은행은 지표와 법제상의 자료를 기계적으로 투입해 순위를 산출했기 때문에 그 나라의 실제 노동계 상황과는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지는 김 소장의 설명이 줄줄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예컨대독일의 법정근로시간은 주 48시간이고 한국은 40시간이다. 이걸 기준으로 한국인들이 독일인보다 일을 적게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속된 말로 ‘또라이’다. 독일인들은 실제로는 35시간밖에 일을 하지 않는다. 한국 노동자의 실제 노동시간은 얼마나 될까? 굳이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질문이다. 우리 노동자들은 몇 시에 출근해서 몇 시에 퇴근하는가? 아마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이 정도는 잘 아실만한 문제다.

실제로 국민들이피부로 느끼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유연성 문제는 심각하다. 노동자들 스스로 ‘1회용 건전지’나 ‘1회용 티슈’로 자조하는 신조어가 생겨났을 정도다. 노동계의 주장에 따르면 이 땅의 비정규직 비율은 벌써 50%를 넘어섰다. 기업의 마구잡이 불법 해고를 비관한 노동자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이런 나라의 대통령이 노동 유연성 문제를 국정 최대 과제로 삼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 천보만보 양보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 문제를 일부 손질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손 치더라도, 먼저 선진국처럼 비정규직과 정규직간 임금격차를 줄이려는 노력과 실업자를 위한 사회안전망 청사진을 내놓는 게 국가 지도자의 올바른 도리요 마땅한 처신이 아닐까? 오히려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사회복지예산은 대폭 줄이면서, 노동유연성만 밀어붙인다면 거리로 밀려나는 실업자들보고 죽으라는 얘기밖에 더 되겠는가.
이제까지 이명박 대통령은 지나치게 기업 편향적이고노조에 적대적인 내용의 발언으로 노동계의 반발을 사왔다. 심지어 악덕 기업주의 입에서조차 나오기 힘든 말까지 쏟아냈다. 지난해 말 대통령은 34개 공기업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노조와 잘 지내 임기를 채우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기관장들이 노조와 서로 잘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그 조직을 아주 방만하게 돌이킬 수 없는 조직을 만든 예가 있다”고 말했다. 노조를 때려 잡아야할 사회악쯤으로 규정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었다.

대통령 당선 이전인 지난 2007년 5월 한 강연회에서는 "자부심이 없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노동자라 부르고 노조를 만든다. … 서울시 오케스트라가 민주노총에 가입해 있다. 바이올린 줄이 금속이라 금속노조에 가입했느냐"고 말한 바 있다. 당시 민주노총의 성명서에 담긴 내용 그대로 “천박한 노동관”이라고 밖에는 달리 적절한 표현을 찾기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자리를 떠난 지도 이제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지금쯤은 기업인의 시야에서 벗어날 만한 때도 됐다. 온 국민을 다 보듬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란 큰 자리에 서 주실 것을 간곡히 당부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