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20일 수요일

43+11/07/20 서귀포에 여름이 왔다

제주에는 4월 고사리 장마가 있다. 4월부터 5월 사이에 고사리를 수확할 철이 되면 장마철 못지 않게 비가 온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란다. 그 이름답게 4월에는 해를 본 날이 채 5일이 안될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렸다. 그리고 또 6월이 되자 진짜 장마가 시작되었다. 

때로는 추적추적, 때로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장마비에 빨래는 마를 생각을 안하고, 집 안 가득 습기가 맺히는 보글보글한 날씨가 한없이 이어지더라. 

그런데 어느덧 7월 20일. 장마 기운은 사라지고 드디어 서귀포의 뜨거운 여름이 시작된다. 작년에 한달 살이하러 왔던게 7월 24일이었는데 그때도 만만치 않게 뜨거웠으니 올해도 대략 그렇지 않을까 싶다. 

올해 처음으로 밤공기가 뜨겁게 느껴져서 잠시 집 앞에 나갔다.


하늘에 달은 없는데 대신 한치 잡이 배들이 바다를 밝히고 있더라. 잠시 바다 바람을 느끼고 왔다.


여름이 되면 특히나 반찬이 신경 쓰이는데 아이들까지 방학을 하고 나면 끼니를 챙기는 게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그래서 오늘은 동치미를 담궜다. 지금은 동치미 무가 나오는 계절은 아니고 여기서는 청갓도 쉽게 구할 수 없어서 뭔가 좀 아쉽지만 생략 버전이 될 수 밖에 없었다.

10일 삭힌 청양 고추 잔뜩, 쪽파 한 단, 사과 한 개, 마늘 잔뜩, 생각 잔뜩, 그리고 무와 소금물.
실온에서 이틀, 김치 냉장고에서 이틀을 보냈더니 제법 맛이 들기 시작한다. 내일 저녁 쯤 되면 꽤 괜찮겠다. 

그래, 이제 진짜 여름이다. 서귀포의 첫 번째 여름이다. 

2016년 7월 17일 일요일

43+8/07/17 마흔 중반

때로는 이렇게 사는게 맞는가 싶어서 울적해지고
살아가야 할 앞날이 막막해서 무서워지고
나의 지난 선택이 올바른 지에 대해 자신이 없고

그래서 많이 흔들린다.

그냥 여기서 삶이 멈추는게 낫지 않은가 싶은 생각을 하다가
바보같이 무슨 헛된 생각인가 싶어 다시 자신을 채찍질하고
오른쪽으로 누웠다 왼쪽으로 돌아 누우며
다시 막연한 내일을 향해 잠을 청하기도 한다.

그만큼 섬 생활이 막연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수도 없이 많은 번민의 날들 속에서도
삶은 내일 해가 뜨면 또 그렇게 이어지리라 믿으며
눈을 감고 잠이 든다.

어쨌든 내게는 지금 함께 있는 가족이 있으니까.
내가 해야할 일이 있으니까

+ 오늘 천국에 간 희연 누나를 생각하며...







2016년 7월 16일 토요일

43+7/07/16 태어나고 기르고 죽고...

제주 내려와서 닭을 키우기 시작한지 3개월 남짓. 암탉, 수탉, 오골계, 칠면조 섞어서 닭장 안에 16마리를 넣어 놓고 계란을 낳으라고 지속적인 협박을 한 끝에 오늘 드디어 3개의 초란을 얻었다. 복날까지 계란을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 했더니 알아 들었는지 어쩐지 초복 전날 계란을 내놓은 센스하며.


제주도 흙이 묻어 있어서 거뭇거뭇한데 사실 작고 예쁜 토종 달걀이다. 일반 닭도 초란은 꽤나 작은 편인데 토종닭이 낳은 알이라서 메추리 알보다 살짝 큰 정도다. 생각보다 많이 작다. 먹기에 미안할 정도. 


그리고 오늘은 토마토 하나와 가지까지 수확할 수 있었다. 사실 제주 내려와서는 거의 처음 해보는 텃밭 농사라 여러가지를 심었지만 경험치로 만족할 수 밖에 없는 수준인데 그래도 뭔가 열리고 또 거둘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곧 우리 텃밭은 대대적으로 개보수를 할 예정이다. 저 정도까지 자란 가지를 수확 했다는 게 어디인가 싶다. 


요즘 식구들이 절반이나 출타중인 관계로 음식을 간단하게 해먹는 중인데 오늘 점심은 닭장에서 거둔 초란과 텃밭의 토마토, 그리고 직접 만들어 숙성한 비빔장을 얹은 비빔면과 마트에서 사온 군만두다. 서귀포에 온 뒤로는 거의 자연식을 하면서 살지만 가끔은 라면이나 인스턴트 만두도 먹는다. 국물이 있는 면이든 비빔면이든 라면의 유혹은 피하기 힘들다. 먹고 싶을 땐 먹는게 쓸데 없는 음식 스트레스를 안받는 방법이다. 

+  저녁엔 서귀포에 나가서 변칙 개봉 중인 <부산행>을 봤다. 영화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는 클리셰 범벅인데 묘하게 흥미롭다. 연상호 감독은 처음으로 실사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이지만 근래 어떤 감독보다도 장면 배치와 리듬 조절이 능란하다. 아무래도 여름 블록버스터라면 무엇보다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 힘이 관건인데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충분히 합격점을 줄만하다. 심지어 1시간 58분에 달하는 적지 않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엔딩 크레딧이 뜨자마자 관객들이 영화가 더 진행되기를 원하는 듯한 아쉬운 탄식을 뱉을 정도였으니 몰입감도 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것이 없으면 기존에 있던 것을 제대로 나열하면 된다. 그런 면에서 연상호 감독은 충분히 영리했고 조만간 <부산행>의 전편 격인 <서울역>이 개봉되면 연상호 특유의 냄새가 <부산행>에서 많이 희석되었다는 지적 또한 어느 정도 상쇄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 영화가 정식으로 개봉 된 것도 아닌데 더 이상 이야기하면 너무 많은 내용을 미리니름하게 되니 <부산행>에 대한 이야기는 이만 참는다.

+ 아이를 낳아 본 것도 아닌데 아버지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대충 간접 체험. 현실이나 영화에서나. 

+ 마동석 최고. 

2016년 7월 15일 금요일

43+6/07/15 비오는 날의 닭곰탕

장마철 서귀포의 날씨는 정말 예측이 불가능하다.  서울에서는 겪어보지 못했던 습도 100%의 날이 계속 이어지는 통에 물 속에서 헤엄치며 자는 기분이 들기도 하는 한 편, 비가 그치고 해가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불볕이 내리 쬐기도 한다. 물론 그러다가 해가 지면 또 갑자기 비가 내린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육지와 전혀 다른 날씨에 적응하고 견뎌내는 일이 쉽지는 않다. 그럴수록 잘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매일 먹는 한 끼에도 이전보다 더 신경을 쓰게 된다. 




닭곰탕은 그런 힘겨운 여름 나기에 도움이 되는 음식이다. 좋은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고, 파, 마늘, 고추가루로 만든 다대기는 기력을 돋궈 주는 역할을 한다. 밥을 말아서 아이들과 함께 한그릇 뚝딱 해치웠다. 든든함이 남다르다.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하다보니 주룩주룩 비오는 소리가 들린다. 

닭 한마리를 데치고 다시 삶아서 살을 발려내고, 삶아낸 국물을 재차 끓이고, 다대기를 만들어서 갓지은 밥 위에 발려 놓은 닭살과 함께 내는 과정을 생각하면 그다지 간단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꽤 손이 많이 간다. 

생각해보면 세상 살이나 인간 관계, 그 어느 것 하나 수월한 게 있을까? 그래도 그 귀찮고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맛있는 음식이 되고, 좋은 관계가 된다. 

바다 건너 제주까지 온지 벌써 4개월. 때때로 육지에서 만나던 좋은 사람들이 그립다. 소홀하게 대한 건 아닌지, 섭섭하게 만든 건 없는지 생각해 본다. 버리고 온 건 아닌데 점점 멀어지는 건 아닌지 불안해질 때도 있다. 어느새 나이가 들어가는 건지 자꾸만 더 소심 해진다.

곰탕처럼 따끈하고 든든한 사람 관계.

시간이 갈 수록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