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18일 월요일
<심야식당> 인생, 얕보지마.
2010년 7월 6일 화요일
백투더퓨쳐(1985~)
2009년 8월 31일 월요일
슈퍼스타K - 여인천하팀 전원탈락, 그리고 최후의 10인
8월 28일 70분 특별 방송으로 편성된 슈퍼스타k는 최종 생방송 본선 무대에 오를 10인을 선정하며 모든 예심을 끝냈다. 지난주 '심장이없어'를 감동적으로 소화해낸 '여인천하'팀 덕분에 이 프로그램은 각종 언론매체에 기사거리를 쏟아낼 수 있었고, 그 결과 케이블 방송으로서는 경이적인 6%의 시청률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고 하는데 그 사실은 그 방송이 나간 직후에만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많은 분량의 블로거 리뷰가 쏟아졌고 지금도 슈퍼스타k를 검색하면 그주에 올라온 리뷰들만 발견 할 수 있다는 점을 통해 파장이 어느 정도였는지 충분히 확인 가능하다. 심지어 이번주 방송에 대한 리뷰도 거의 찾을 수 없다. 그러니까 제작진 쪽에서 충분히 기대했을, 시각장애인 포함 팀을 통한 프로그램의 이슈화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런 기대감을 안고 지켜본 6회 방송에 대해서는 오히려 이 프로그램 전체에 대한 배반감과 의구심만 더 커질 수 밖에 없었다. 그정도로 모든 심사를 둘러싼 모든 상황은 '이해불가'였다.
지난주에 가장 큰 이슈를 몰고 왔던 '여인천하팀' 5인은 최종 10인 선발전에서 모조리 탈락했다. 물론 2인 라이벌 미션에 돌입하자 그들 5명이 함께 노래했을때 만큼의 실력을 보이지 못했고, 개인이 가진 단점이 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는 하지만 그 다음 단계에서 다섯명 중 단 한 명도 합격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움을 넘어 심사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좀 더 억지를 부리자면 '전부 떨어뜨리기 위해 전부 합격시킨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각장애인 김국환은 팀경합 당시에도 별반 눈길을 끌지 못했던 김휘철과 한 조를 이루게 되었고, 김휘철이 컨디션 난조를 이유로 일찍 잠자리에 드는 동안에도 분명 좀더 늦은 시간까지 연습을 했음이 분명했었다. 하지만 연습을 했고 안했고를 떠나 그가 2인 미션 무대에서 보여준 행동은 자포자기에 불과했다. 무엇때문에 김국환은 그렇게 의욕을 상실했을까? 단지 노래를 외울 수가 없어서라고 보기엔 김국환의 모든 행동은 더이상 이 프로그램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싶을 정도로 손을 놓은 상태였다. 제작진의 말대로 전국에서 7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오디션을 치른 끝에 최종 10인 선발전까지 올라갔다면 그것은 결코 쉬운 무대가 아니며,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상황을 떠나 누구도 쉽사리 포기하고 싶지 않은 무대였을텐데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고서는 보일 수 없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5명 전원 합격으로 인한 악플이 쇄도했고 이 일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소문이 있는데 합숙 기간중 굳이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까? 부디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김준현, 김승현 쌍둥이 형제의 심사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두 쌍둥이 형제의 무대에서 심사위원들은 김승현을 합격시키고 김준현을 탈락시켰지만, 곧이어 10인 선발 심사에서 김승현마저도 탈락시켰다. 두어시간만에 탈락시킬 사람을, 그것도 노래 심사가 아닌 심사위원 회의를 통해 떨어뜨릴 거라면, 굳이 그 사람을 합격 명단에 집어넣은 의도는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차라리 14인이 아니라 그저 노래 심사에서 10명만 뽑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시쳇말로 '방송분량'을 뽑고, 협찬사의 두부제품을 시식하는 장면을 넣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이런 요식행위에 가까운 어색한 심사를 왜 여러번 하는 건지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케이블 방송을 통해 넘쳐나는 리얼리티 쇼의 대부분은 거의 다 해외 프로그램에서 그 포맷을 따오고 있다. '슈퍼스타K'도 심사위원의 배치방식, 심사위원의 캐릭터, 그리고 합격자와 불합격자를 발표할때 의도적으로 미묘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연출등이 이 프로그램의 모체가 된 '브리티시 갓 탤런트'나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가져온 포맷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문제는 심사 방식 자체가 가진 문제와 함께 재미 참가자들을 대하는 제작진의 자세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품게하는 의도적인 연출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참가자를 태우고 서울역에 도착한 차량에 탄 탑승자는 불합격자가 될 것이라고 말해놓고 그 차량을 합격자들이 모여 있는 잠실의 올림픽 파크텔을 한바퀴 돌아 지나친 뒤 서울역에 내려놓은 일이었다. 이 연출은 참가자들에 대한 제작진의 예의가 어느 수준에 머물렀는가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그냥 서울역에 떨궈졌어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을 참가자들, 과연 잠실을 지나쳤을때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시청자가 이해할 수 있건 없건, 제작진의 마음에 들었을법한 최후의 10인은 발탁이 되었다. 노래 실력이 크게 모자란다는 평가를 들었던 김주왕의 합격이 여전히 문제가 되고, 강진아를 포함한 방실이 3인방의 탈락도, 가창력이 좋았던 정슬기의 탈락, 그리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회자되고 있는 김현지의 탈락까지 시청자들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프로그램은 제작진의 의지대로 쭉 달려나가고 있다. 그저 참가자들과 시청자들만 순진했던 걸까? 최근 몇년간 엠넷을 통해 방송된 막장 프로그램들을 생각할때 이 프로그램이 그저 착한 전국노래자랑이 되리란 순진한 기대를 했던 건 엄청난 오해였을까?
전국적인 대규모 오디션을 통한 국민적 스타의 발굴이란 최초의 취지에서도, 오디션 리얼리티 장르의 도입이란 면에서도, 최근 유행하는 케이블티비식 미션 통과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도 이 프로그램의 장점이 자꾸 사라져간다는것은 꽤 아쉬운 일이다. 남은 10인중에서 분명히 최후의 1인은 발굴될 것이고 기획사의 의도대로 스타로 키워지겠지만 기대치가 높았던만큼 커져버린 의구심과 아쉬움은 어떻게 해야할지, 10인의 본선 생방송 무대가 그것을 해소해줄 것인지 지켜봐야겠다.
2009년 8월 28일 금요일
인생의 회전목마 -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일본 문예춘추에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2005년 최악의 영화 3위로 뽑혔다는 소식이 날아온 후로 이 영화를 보고 실망스러웠다고 이야기한 관객들의 평가가 다소 정당성을 얻고 있는듯하다. 한국 관객들의 관람평과 일본 잡지에서 내린 평가는 여러가지 관점에 차이가 있을 수 있을텐데도 그런 저런 구체적인 이유를 다 제쳐 놓고 그저 '실망'이라는 단어로만 결론짓는 것을 보고 있으니 다소 석연치않다는 생각이 든다.
<하울...>이 개봉된 이후 가장 먼저 나온 평은 그것이 전작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보다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일반 관람객을 동원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 <센과 치히로...>였고, 또 가장 최근에 보여진 작품이었으니 비교 대상이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2시간 30분이라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에서는 거의 금기나 다름없는 긴 러닝 타임을 가진 <센과 치히로...>였고, 스토리 보드 분석을 통해서도 알려진 바와 같이 그 긴 러닝 타임 동안 이중, 삼중으로 겹쳐진 복선적 내러티브를 극영화 못지 않은 깔끔함으로 꾸려낸 점이 있었으니 그토록 높은 평가를 받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에 비하면 <하울...>은 분명히 부족한 점이 많다. 상대적으로 짧은 러닝 타임에, 무언가 덤벙 덤벙 지나가는 듯 빠르게 전개 되는 이야기속에 설명이 부족하고, 따라서 관객의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만한 내러티브의 인과성과 캐릭터의 개연성이 떨어진다. 한마디로 불친절하다는 이야기다. 씨네21에 게제된 정성일 평론가의 리뷰나, 듀나씨의 글에서도 이런점을 지적하고 있다. 다들 맞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 만, 과연 그 이야기들을 전부 수용하면서도 <하울...>이 그저 못만든 작품이라는 말에 수긍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자유분방한 이야기 전개와 중구난방인 캐릭터들의 행동이 감독의 의도였다고 보는건 지나치게 관대한 일일까? 조금이나마 <하울...>을 옹호하고 싶은데 그럼 어디에서부터 이야기를 끄집어 내야할까? <하울..>을 이해할 수 있는 몇가지 힌트들을 살펴 보려고 한다.
확실히 60대에 들어선 미야자키 하야오의 행보는 <모노노케 히메> 이후 섣불리 예측할 수 없는 길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잠시 잠깐 참고를 위해 미야자키 하야오의 필모그래피를 좀 열어보도록 하자.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1984)
<천공의성 라퓨타> (1986)
<이웃집 토토로> (1988)
<마녀의 우편배달부 키키> (1989)
<붉은 돼지> (1991)
<모노노케 히메> (1997)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
필모그래피 리스트를 놓고 살펴볼때 <하울...>은 <천공의 성 라퓨타>, <마녀의 우편배달부 키키>와 같이 유럽적 공간을 무대로 하고 있다. 실제 존재하는 유럽을 닮아 있으면서도, 유럽의 현재가 아니라 18, 19세기의 과거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고,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기술 문명을 토대로 하고 있는 가상의 공간이기도 한 미야자키 특유의 '이상향 공간'으로서의 유럽 말이다. '하울의 성'이 그토록 괴이한 모양새를 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하울의 성'이 지나가는 것을 즐기면서 구경하고, 길거리와 하늘에 마법사가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나머지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한 편, 석탄을 때면서 증기 기관으로 움직이는 기차와 자동차가 있는 부조화의 공간이 <하울...>의 배경이다. 한때 미야자키 하야오는 현재의 일본이 너무나 싫고 두려워서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못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가까스로 어렵게 돌아온 일본 배경의 애니메이션인 <이웃집 토토로>에서도 30년이나 40년 전쯤으로 보이는 과거의 일본, 그것도 시골을 무대로 그렸던 것이라고 했다. <모노노케 히메>에서는 한술 더떠 아예 막부 시대의 일본으로 가버렸고, 그나마 현재를 다뤘다고 하는 <센과 치히로...>에서도 '유바바 여관'이라는 판타지의 공간으로 모든 것을 대치했던 미야자키 하야오였다. 그런 그가 젊은 시절 자신이 즐거워 했던 가상 유럽으로 다시 돌아가버린 것이 <하울...>이다. 다시 돌아간 노스탤지어의 공간에서 '소피'는 전작인 <... 라퓨타>의 '시타'나 '파즈', <...키키>의 '키키'처럼 십대의 어린 주인공이 아니라 90살 먹은 노파가 되어 있다. 어릴 때, 젊을 때 즐겼던 공간에 나이 든 감독이 나이 든 주인공을 세워 놓고 있다는 것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나이가 든다는 건 영악해지는 거야'라든지 '늙고 나니 더 이상 잃을게 없다는 것도 나쁘지 않네'라고 되뇌이는 소피의 대사는 황혼길에 접어든 노장 감독의 독백처럼 들린다. 한때 그것이 도피의 수단이고 방법이었다면, 이제는 더이상 잃을 게 없으니 도피할 이유도 없고, 그래서 다시 한 번 그런 배경의 애니메이션을 만든다고 해도 또 누가 돌을 던진다고 해도 두려울 것이 없는 늙은 감독의 '배짱플레이'때문에 <하울...>이 만들어 진것이지, 그것을 단순히 '울궈먹기'라든가 반복에 의한 '식상함'으로 치부한다면 다소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몰이해에서 온 판정이라고 보게 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물론 원작 동화가 유럽에서 온 것은 사실이다.) 예측 불허처럼 보이는 미야자키 행보를 조금이나마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첫번째 힌트도 물론 이것이 되지 않을까한다.
<하울...>에 전쟁에 관한 언급이 들어가 있는 것에 대해서도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작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기술 공헌상을 수상할때에도 베니스에 등장한 단 하나의 '반전 영화'라는 수식어를 받으며 이라크 전과의 관련성이 거론 되기도 햇으나 <하울...>에 원작에도 없던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포함 된 것은 단순히 이라크전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생각해보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군에 문명과 전쟁에 대한 반감이 드러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2차 세계대전중 태어나 군수 물품을 공급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났다거나, 이상적 사회주의자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 적잖이 알려져 있는 것처럼 미야자키 하야오는 물질 문명의 거대한 발전을 거부하고 - 스팀펑크스러운 산업 혁명기의 초창기 기계 문명 발전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 그로인한 군수 무기 산업의 발달과 전쟁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 나우시카>에서 환경 오염으로 인한 동식물의 멸종을 다루었고, <이웃집 토토로>에서 오염된 도시 문명의 폐해를 거의 받지 않은 시골 마을의 정경을 담는 다거나, 전쟁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아예 인간이기를 거부해버린 <붉은 돼지>처럼 <하울...>에서도 검은 연기와 포화는 하늘을 뒤덮고 주인공 하울은 전쟁을 막기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하면서 동분서주하고 있다. 포화에 뒤덮인 소피의 마을 풍경이 이라크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은 미야자키의 어린 시절, 2차 대전중의 일본과 더 가깝지 않은가? 모든 전쟁에는 이유가 있다고 하지만 모든 전쟁의 제물이 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유란 없다. <하울...>에 전쟁 장면이 있지만 그러한 전쟁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등장인물들이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모르는 것처럼 관객들도 알수가 없다. 일본의 관객들과 다른 나라 관객들에게 <하울...>의 이 전쟁 장면은 사뭇 다른 느낌으로 보이게 되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 일본은 분명 전범국이지만, 원폭을 두 방이나 때려 맞은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이기도 하다. 하늘에서 터지는 포화는 하나비가 절대 아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쟁을 싫어하는 이유는 전쟁 아래서 태어낳고 전쟁을 보았고, 겪은 세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반전의식은 어제 오늘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하울...>의 전쟁 장면에 당위성을 부여하려고 한다. 이것이 두번째 힌트이다.
남들이 실컷 했던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자.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하늘을 난다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것이 단지 오우삼의 영화에 성당과 비둘기가 나오는 것 같은 그저 단순한 '클리셰'일까? <하울...>에서도 다 망가진 하울의 성이 마지막 장면에서 걷지 않고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간다. '날지 않으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가 아니다'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치고는 참 재미있는 일이다. 물론 영화 시작 5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하울과 소피가 왈츠를 추듯 하늘을 나는 장면이 있고, 설리먼의 성에서 빠져나온 소피가 비행기를 모는 장면이 있지만, 흰구름이 떠 있는 파란 하늘을 나는 하울의 성이야말로 제대로 미야자키스러운 하늘을 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렇게 하늘을 난다는 것이 미야자키 작품의 빼놓을 수 없는 한가지 요소인 것은 확실한데 재미있는 것은 이제까지 미야자키 작품에서 가장 날기 힘들만큼 둔중하고 무겁게 보이는 '하울의 성'이 가장 가볍게 팔랑거리면서 하늘을 난다는 사실이다. 덩치는 거의 <미래소년 코난>에 나왔던 기강트 비행체에 비견할만큼 묵직해보이는데 말이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설리먼으로부터 도망쳤다던 하울과 하루 하루 목적없이 살다가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를 찾고 '별빛의 머리색'을 얻은 소피를 떠올려보자. 미야자키 하야오의 사진을 본 사람을 알겠지만 이제 그는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할아버지가 되었다. 본인이야말로 '별빛의 머리색'를 얻은게 아닌가 싶다. 젊은 시절 그를 무겁게 짓누르던 의식적 무게감으로부터의 해방은 미야자키 하야오를 좀 더 가뿐하게 하늘로 날아오르게 하고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거부감', '전쟁에 대한 두려움'뿐만 아니라 잘만든 작품이 가져야할 치밀한 내러티브, 강렬한 캐릭터에 대한 압박감으로부터도 조금씩 풀려나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하울의 성'을 팔랑 팔랑 날려보내면서 갈짓자로 움직이는 정신없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도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목적을 위해 일자로 돌진하는 맹목적인 영웅대신 갈팡질팡하는 주인공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하울...>의 작품성을 한단계 떨어뜨린 것이 되었다 하더라도말이다. <센과 치히로...>를 개봉전 전주 영화제에서 보고 나오는데 누군가 내게 20자평을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남겨주었다. '더이상 무겁지 않은 미야자키 하야오, 하늘로 날아오르다'라고. 이제 그것은 <하울...>에 대한 20자평으로 던져 주고 싶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무릎에 앉혀놓고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옛날에 멋진 마법사가 살았고,
나쁜 마법사의 마법에 걸려 90살 할머니가 된 소녀의 이야기.
두 사람은 만났고,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무서운 전쟁이 일어났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그 전쟁을 끝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현실의 전쟁이 사랑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임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만은 적어도 할아버지의 이야기속에서는 그럴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가 앞뒤가 안맞는다고 투덜대는 것이 더 우습지 않은가? 미야자키 할아버지의 아름다운 옛날 이야기를 자청해서 두번이나 들은 나는 앞으로 10번이고 100번이고 다시 그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청할 것이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계속 내게 멋진 이야기를 해주실 것으로 믿는다. 설사 돌아가신다고 해도 그 이야기는 내가 할아버지가 된 다음에 내 손자에게 또 해줄 수 있을 것이고.
길고도 장황한 이야기를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by Aaron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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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드전기>, <벼랑위의포뇨>까지 지브리의 다음 작품들이 계속 나왔지만 불만족스러운 것이
저뿐만 아니겠지요.
2009년 8월 24일 월요일
2009년 8월 1일 토요일
<업> 봤습니다 & etc (스포일러 만땅)
1. 아무리 해도 울적함을 벗어날 수 없는 여름날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햇살은 짱짱하게 뜨거운데 왜 가슴엔 먹구름이 가득한지 모르겠습니다. 등짝에 곰이라도 올라 앉은건지, 가슴에 백만톤의 추가 매달려 있는건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냥 이 기분에 이 노래가 어울리는 것 같아서 걸었습니다. . 듀스.. 사랑두려움
2. 픽사의 열번째 작품 <업 UP>을 봤습니다. 그냥 <업>이라고 쓰니까 강수연이 나왔던 한국영화 <업>이 자꾸 생각나서... ^^;
휴... 한숨만 나옵니다. 영화가 지나치게 좋으면 주절거리기 이전에 우선적으로 한숨을 쉬게 되는 버릇이 있습니다.
어떤 문장을 쓰더라도 영화를 보고 나온 감상을 능가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인거지요.
이 영화, 아마 나이가 한 5살만 어렸을때 봤더라도 그냥 그럭저럭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에 머물렀을지 모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영화를 보고 충분히 즐기고 느낄만한 그런 나이가 되었다고는 것이고, 이 영화가 나이든 사람이 좋아할 요소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결국 제가 나이들었다는걸 시인하게 되는 것이지요... 휴....;;;;;;;;;;;;
픽사의 스토리 부서는 대체 어떤 두뇌들이 모여있길래 이토록 참신한 스토리를 끝도 없이 내놓을 수 있는 걸까요?
게다가 그것들이 그저 재기발랄함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간 감정의 심층부까지 파고 들 수 있다는건 그들의 작품 이상으로
경이롭습니다. 이쯤 됐으면 초심을 잃을법도 한데 그렇게 되기는 커녕 한층 성숙한 작품을 내놓고 있으니 한때나마 영화,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싶었던 사람의 입장에서는 부럽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무언극으로 진행되는 초반 10분 동안에 한 사람의 70년 인생을 압축하는 솜씨는
그들의 전작 <라따뚜이>에서 1분만에 진정한 고향의 맛을 설명하던 그 장면에서 한층 진일보한 것입니다.
영화 시작한지 5분, 10분만에 이미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들이 줄을 서는 것을 보면 그건 보통 능력이 아닌겁니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진행되는 내내 관객의 선입견을 뒤집습니다.
기대감이 컸기 때문에 사전에 어떤 정보성 기사나 리뷰를 보지 않을려고 노력했고, 제가 짐작할 수 있었던 건
'괴팍한 노인네 하나가 지겨운 도시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풍선여행을 한다'라는 정도였습니다. (그것도 정보가 아니라 짐작이었던거죠)
그런데 칼 프레드릭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노인네는 이유없이 심술을 부리는 괴팍한 노인네도 아니었고,
도시를 떠나는 이유도 제가 생각한 그런게 전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여행의 과정은 말도 안되게 생략되어 있습니다.
풍선을 달고 하늘로 떠오르자마자 5분도 안되서 목적지인 남아메리카 '파라다이스' 폭포에 도착하고 말죠.
가는 과정의 어려움이라고는 돌풍에 휘말린것 한번 밖에 없습니다.
대체 어쩌자고, 대부분의 영화에서 할애할법한 '과정'의 어려움을 생략해버린걸까요?
놀랍게도 진정한 주인공의 어려움은 북아메리카에서 남아메리카에서 가는 동안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로 삼았던 폭포의 건너편 절벽에 도착한 탓에, 눈앞에 보이는 저편 절벽까지 걸어가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벌어집니다.
더불어 남아메리카까지는 타고 날아갔던 집이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는 주인공의 진로를 방해하는 거대한 짐으로 변해버립니다.
그후로 주인공 할아버지는 영화의 절반 가까이 풍선달린 집을 짊어지고(!) 다니게 되니까요
행복의 원천이라 여겼던 나의 집이 벗어날 수도 없고, 내버릴 수도 없는 인생의 짐이 된다는 것, 뭔가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누군가는 작년에 많은 이를 괴롭혔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이야기하더군요. ㅋㅋㅋ)
곁가지 식구로 딸려온 애와 새와 개는 물론이고 평생을 살았던 집까지 지켜야 하는 할아버지는 인생 말년에 새로운 고민에
처하게 됩니다. 결국 모든걸 지킬수는 없게 되자 할아버지는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집으로 대변되는, 일생 동안 지켜왔던 가치만을 고수할 것인가, 그것을 버리게 되는 한이 있어도 새로운 가치에 지켜갈 것인가하는
것이죠. 누구에게나 쉬운 문제는 절대 아닙니다.
이쯤되니까 왠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생각나더군요.
특히 왠지 어처구니 없는 공중전투까지 펼쳐질땐 이 영화가 적당히 하야오 세계관을 빌려오지 않았나 싶더군요.
물론 표절은 절대 아닙니다. 영감을 주고 받았겠지요.
돌풍속에서도 접시 하나 버리지 않기 위해 애쓰던 할아버지가 제 손으로 오래된 가구와 집안 살림을 다 내버리고,
결국 '집'까지 버리게 되었을때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을까요?
자연스럽게 주인공 못지않은 아쉬움을 느껴버린 당신은 이미 나이가 든겁니다. (ㅋㅋㅋ)
어쨌거나 그렇게 누구는 돌아가고, 누구는 마무리를 짓는 장면에서 딱 감독이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그리고자 했는지 감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애니메이션이 단순 모험 활극 수준을 훨씬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이고
픽사의 명작 리스트에 넣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 된거죠.
<업 UP>은 2D 자막판과 3D 더빙판으로 상영되고 있습니다. 3D 더빙판을 볼 수 없는 것이 많이 아쉽지만
이순재 할아버지의 더빙도 상당히 잘 빠져나왔다고 하니 3D 더빙판으로 한 번 더 보려고 합니다. DVD로 나오면 꼭 소장할 생각이구요.
픽사는... 정말... 1년에 한번씩 일해보고 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나쁜 회사입니다. (ㅠ.ㅠ)
3. 트위터 시작 4일만에 26명을 팔로잉하고, 27명의 팔로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쪽 재미가 만만치 않군요. (^^)
2009년 7월 28일 화요일
<해운대> 봤습니다 & 그 외 이것저것
1. 영화를 보고 진지하게 글을 때려 본 게 언제적인지 기억도 안납니다.
포스터 한 장 올려가며 썰을 풀고 싶은데 그게 망설여지는군요.
자체 검열이겠지요. (^^) 어제 울적한 기분도 달랠겸 <해운대>를 봤습니다. 윤제균 감독은 사람 웃기는데는 정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인가봐요. 영화 초반부가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엉성하게 보이도록 유머를 깔아놨습니다. 아니 실제로 좀 엉성하기도 합니다.
편집도 산란하고, 이 사람 저 사람 나와서 부산 사투리로 떠드는데 정리가 안되는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산란합니다.
그래도 웃기긴 엄청 웃겨요.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쓰나미 장면 CG는 생각보다 많이 안나옵니다.
그런데 기묘한 리얼리티가 있습니다.
CG가 튀고, 엉성한 합성이 난무하는데도 그렇게 공포스러울 수가 없더군요.
영화를 다보고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하이퍼 리얼리티'는 비싸고 독한 효과로 완성되는것만은 아닌건가보다 싶었습니다.
가상현실 효과가 안구 앞에서 아무리 현란하게 펼쳐지더라도 그게 그냥 시시한 구경거리로 끝날 수도 있고,
엉성한 효과라도 보는 사람의 기억 또는 체험과 결합되면 오히려 실제보다 더 크게 다가 올 수 있겠구나 하는 그런 느낌요.
타이타닉이 가라앉거나, 유성이 날아와 자유의 여신상을 박살내는 장면보다도 해운대 구멍가게 하나가 물에 잠기는 장면이
더 소름끼치는건 '나도 알고 너도 아는' 그곳에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더 크게 작용한 탓인거 같습니다.
어쨌든, 만족할만큼 웃고, 또 눈물도 흘리고, 생각보다 감동이 있는 '피곤한' 영화였어요. ㅎㅎㅎ
2. 트위터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하다보니, 심상정씨, 노회찬씨, 송영길씨를 팔로잉 하게 되었네요.
아주 쏠쏠한 재미가 있습니다.
연아양, 훈련중인건 아는데 업데이트좀......! (ㅋㅋ)
3. 사랑할 뻔 했습니다.
결과는 좋지 않았어요. 처참하게 되었지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닌가봐요. (^^)
2009년 7월 3일 금요일
구니스에 대한 예전 포스팅 & MORE (2004. 5.7. 작성)
2007년 9월 25일 화요일
2007년 8월 2일 목요일
경성스캔들, 올해의 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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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 우연히 1회 본방을 보고 푹 빠져들었던 <경성스캔들>이 8월 1일 16회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첫회와 마지막회만 겨우 본방을 보고 나머지는 케이블 티비와 주말 재방송을 통해 힘겹게 때웠지만 그래도 간만에 꾸준히 챙겨본 드라마였군요. (덕분에 장시간 잠잠했던 블로그질까지 하게됩니다. 직접 글을 작성하는건 얼마만인지......)
기획의도가 원래 그랬다지만 첫회부터 일제 강점기 재현에 대한 기존의 관점을 확 뒤집는 '개나 줘버려' 대사부터 욕 들어먹는거 아닌지 걱정스러울 만큼 현대식으로 재현된 복색과 대사들때문에 신선하면서도 낯선 시도들이 결과적으로 16회까지 오는 동안 꽤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정말 선을 넘어버릴까봐 많이 우려했었거든요. 작가님과 연출자님이 그런 중심을 잡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을 것이고, 거기에 캐릭터들을 잘 살려낸 배우들의 공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차송주 역할의 한고은씨는 늘 지적당하는 부정확한 발음이 오히려 송주라는 캐릭터의 나른하지만 섹시한 매력을 부각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그런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한고은씨가 아닌 다른 사람의 차송주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끝까지 잘해주었습니다. 어떤 분의 블로그를 보니 15회까지 <경성..>의 명대사를 정리해서 올려주셨던데 대부분이 차송주의 입을 통해 나왔더군요. 그만큼 차송주는 다소 붕떠보이는 캐릭터인 선우 완과 나여경에게 부족한 무게를 담당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이었음에 분명합니다. 그리고 송주는 첫회부터 짐작했던대로 비장하게 죽음을 맞이했지요. 저는 혹시 마지막즈음에 이수현과 차송주가 함께 죽는 상황이 연출되지 않을까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고, 제 머리속의 클리셰를 깨끗하게 걷어차주신 한준서 감독님께는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
강지환씨 같은 경우는 솔직히 그 이전에 출연한 다른 드라마를 본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저 제가 기억하는건 모 국제전화 광고에서 김하늘씨를 넉다운 시킨 비싼 차 가진 동창생으로 나왔었다는거지요. (그 사람 강지환씨 맞지요?) 그 이전에 했던 연기를 본적이 없던 탓에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강지환씨의 연기는 제가 보기엔 아주 신선했습니다. 선우 완이라는 부잣집 도련님을 어쩜 그렇게 철딱서니 없는 귀염둥이로 그려낼 수 있었을까요? 최종회에서도 어김없이 총탄이 쏟아지는 와중에 '우리 해방되면 뭐할까?'라고 발랄하게 묻는 모습은 선우 완 캐릭터에 완성 도장을 찍는 대사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나여경 역할의 한지민씨도, 이수현 역할의 류진씨도 기대 이상 맡은 바 역할을 잘 해냈습니다. 하지만 이강구 역할의 윤기원씨는 재발견이 아닐까 싶네요. 불과 몇달전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도 특별출연으로 말도 안되는 코믹 연기를 했던 분 치고는 16회 동안 줄기차게 끝까지 제대로 악역을 해냈습니다. 최종회에서는 분량도 굉장히 많은 분량을 소화해냈구요. 이강구도 결국 이수현의 손에 칠필살의 대상으로 죽어갔지만 그 역시 한 시대를 살아간 인간으로 어쩔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끝부분에 가서 조금은 보여주더군요.
선우완, 나여경, 차송주, 이수현, 이강구, 완의 부모, 여경의 어머니, 그리고 지라시 3인방까지 우리가 기존에 보아왔던 숱한 영화와 드라마속에 나오던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념만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 이 드라마엔 한명도 없었다는게 (아, 총독부 야마시타는 제외로군요. ^^) 이 드라마의 최종적인 장점이 되지 않았나 싶네요. 그 시절에 그렇게 독립에 대한 열망과 신념으로 무장투쟁을 한 분들을 모욕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평범하게 숨쉬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정말 평범한 그들의 마음속에도 잔잔하게나마 '해방'의 그날을 그리는 희망이 있었다는 걸 보여준 드라마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뭐 드라마에서도 나왔듯이 '살수(殺羞)만이 투쟁의 전부는 아니다'라는 것이죠.
지나치게 가볍게 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초반의 우려도, 또 이야기가 진행되다보면 너무 무거워져서 기존의 극들과 똑같아 지는 것 아닌가 하는 중반의 우려도, 감당할 수 없이 비극으로 끝나는거 아닌가 하는 종반의 우려도 모두다 헤치고 <경성스캔들>은 딱 그 시대만큼의 희망과 불안을 남기고 해피엔딩도, 언해피엔딩도 아닌 상태로 끝을 맺었습니다. 선우 완, 나여경은 만주로 떠났고 이수현은 어디선가 계속 독립운동을 했겠지요. 그들이 그렇게 바라는 해방이 온 이후에도 결코 그 사람들이 마냥 행복할 수 없는 역사는 계속 되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이 그렇게 사셨던거지요. 그래서 '먼저 가신 분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소중한 이땅에서 마음껏 연애하고, 마음껏 행복하십시오'라는 제작진의 마지막 멘트는 참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시청률에 고전하고, 축구경기에 밀려 가엽게 소외당한 감이 있지만 그래도 끝까지 초심을 잃지않고 드라마를 완성한 모든 배우들과 스탭들에게 감사합니다. 드라마 정말 잘 봤습니다. 감히 올해의 베스트라 말하고 싶습니다.
ps. 드라마 공식홈피에 뜨는 애물단 비망록 너무 좋습니다. ㅠ.ㅠ
| 앞이 캄캄해 보이지가 않아 니 앞에 서는 길 끝을 알 수 없어 지친 내 삶에 사랑마저 울어 뭐하나 맘처럼 되는 일이 없어 내 맘이건 아닌데 너만 보면 작아져 터질것만 같은데 사랑마저 날 아프게해 I never knew love, No one to tell us no I wanna with you And then I don't wanna let it go 오늘도 그댄 날 자꾸 흔들어 널 갖고 싶어 세상 틀 안에서 갇힌 나를 버리고 거친 비바람 몰아친다 해도 두렵지 않은 건 나 뿐만이 아냐 더는 이대로 기다리지 않아 서로를 헤매다 끝날지도 몰라 다온것만 같은데 다시 보면 제자리 터질것만 같은데 사랑마저 날 아프게해 I never knew love, No one to tell us no I wanna with you And then I don't wanna let it go 오늘도 그댄 날 자꾸 흔들어 널 갖고 싶어 세상 틀 안에서 갇힌 나를 버리고 이밤도 저물어 또 다른 하루 변한 건 하나도 없는데 내 맘을 담아서 하늘에 보내고 다시 세어봐도.. This is my story, Always I let it go I wanna with you And then I don't wanna let it go 아직도 내겐 남은게 많은데 다 주고 싶어 나를 가득 채운 너란 사람에게 다 I never knew love, No one to tell us no I wanna with you And then I don't wanna let it go 오늘도 그댄 날 자꾸 흔들어 널 갖고 싶어 세상 틀 안에서 갇힌 나를 버리고 | |
2007년 4월 23일 월요일
'우리학교'를 보고 왔다
1. 갈수록 영화보기가 팍팍해진다. 조금이라도 괜찮다거나 봐둬야겠다 싶은 영화들은 찾기 쉬운 대형 영화관에선 하루에 두번이나 세번 상영하면 다행이고, 어쩌다가 종일 그 영화를 틀어준다는 극장을 발견하고도 애써 찾아가는 일이 번거로워 포기하게 되는게 현실이 되었다. 다소간 호들갑스럽게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도 이미 교차 상영의 올가미속으로 들어가버렸고, 5월 1일이면 전국 국장의 삼분지 일 이상이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에 휩싸여버릴텐데 불현듯 보고 싶은 영화를 정해놓고 날짜를 잡아놓고 설레이는 기분으로 극장을 찾아갔던 10여년전이 그리워지는건 진정 구태의연한 감상일까?
2. 종로와 압구정에 있는 '스폰지하우스'. 애칭 종폰지, 압폰지라고 불리우는 그 극장을 찾아가 김명준 감독의 다큐멘터리 <우리학교>를 보았다. 학교 다닐때야 수업시간이든, 쉬는시간이든 귀한 영화, 남들이 안보는 영화, 작은 영화를 볼 기회가 많았다지만 사회인이 되고 영화판에서 멀어진 이후로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400개관에서 개봉한다는 '큰'영화들도 못보는 판에 '작은'영화를 찾아 다닌다는건 그저 마음속 한귀퉁이에서 겨우 숨만 쉬고 있는 식물인간 같은 영화광의 '자의식'에 인공호흡기를 달아주는 요식행위인지도 모른다.
3. 영화가 시작되면서 덜컥 겁이 난건 '조선학교'라는 이름이었다. 이젠 더이상 지도상에 존재 하지 않는 '조선'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학교, 그리고 그 학교에 다니는 '조선인' 아이들. 그 아이들의 학교 생활을 다룬 다큐멘터리 '우리학교'는 그 조선학교의 다른 이름이자 이 영화의 제목이다. 실재하지 않는 것을 향한 찐득한 그리움을 가슴에 깔고, 그것을 다시 삶을 영위하는 원초적 힘으로 되살려내는 '조선인'들과 그 후손들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그들은 왜 없어진 것을 인정하지 않는가?'
'그들은 왜 우리랑 같은 모습이면서 같을 수 없는가?'
'한국인도, 남조선인도, 북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닌 그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와 함께 시작된 걱정과 우려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차차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만 나만의 우려가 아니었고, 나만의 걱정이 아니었다. 나에게 단순한 우려였던 어떤 것들이 그들에겐 삶을 가로막고 방해하고 힘들게 하는 '현실'이었다.
4. 영화는 재일조선인의 문제와 함께, 통일에 대한 새로운 시선의 문제, 그리고 남한 사회가 당면한 학교 교육 문제의 대안에 대한 화두까지 많은 부분을 얽어맨채 두시간여를 달려간다. 너무나 생소한 '조선인' 교포들의 모습에, '고향은 남조선이지만 키워준것은 북조선'이라는 가슴 뜨끔한 한마디에, 자칫 우리가 마음으로 바라마지 않았던, 그러니 이미 상실한 것들에 대한 노스탤지어로 보일법한 모습들에 혼란스런 마음은 영화가 끝날때까지 가슴 한구석에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아이들은 사랑스럽고, 티없이 밝고, 강하게 자라난다.
5. 영화가 끝나고 내 현실로 돌아오면 저 먼 혹가이도의 친구들 이야기는 또다시 멀고 먼 낯선 곳의 일이 되어버린다. 나의 현실에서 저 먼 미국땅의 한 korean이 저지른 대형 총기 살인과 혹가이도의 굳센 조선인들 사이에 큰 차이는 없다. 무엇을 끌어안고 살아갈 것인가? 남한이, 남조선이 영원한 섬으로 남지 않는 길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마음이 얼얼해지는 시간일 수 밖에 없었다.
2006년 9월 11일 월요일
플루토 by 우라사와 나오키
2006년 5월 28일 일요일
<강철의 연금술사 - 샴발라의 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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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판 <강철의 연금술사 / 샴발라의 정복자> 주제곡 'Link'
- TV판에서 시작된 하가렌과 라르크의 인연은 여기까지 계속되는...
2006년 5월 17일 수요일
애니맥스 방송작품 - 오늘부터 마왕!
4월 29일부터 방송을 시작한 스카이라이프 651번 채널 애니맥스.
요즘 퇴근후 나의 유일한 낙이라면 바로 이 채널을 고정시켜 놓고
마냥 들여다보는 것이다.
케이블 시절엔 투니버스와 온게임넷이 나의 주 고정채널이었고
스카이라이프로 옮긴후에는 애니원을 열심히 봐주려고 했었으나
투니버스가 사골버스라고 욕을 먹는것 이상으로
푹푹 삶아 뼈가 다 녹아 없어지도록
우려먹기에 정신이 없는 것이 애니원 (일명 사골원) 되시겠다.
예를 들어
토요일, 일요일에 각 3회씩 <강철의 연금술사>가 방송되어 중반부로 넘어갈때쯤
금요일밤에 다시 처음부터 <강철의 연금술사>가 또 시작되는 방식이다.
그렇게해서 금요일에 방송되는 <강철의 연금술사>가 중반이 넘어가면
토요일엔 다시 1회부터 시작되는
정말 어이없는 편성의 극치를 보여고 있다.
그런 와중에 스카이라이프 소니픽쳐스 합작으로
애니맥스가 개국됐다.
큰 기대없이 첫방송을 들여다보았더니
오오.. 이건 완전 기대이상이다.
아무래도 처음 시작하는 방송이고 하다보니
고정 시청자 흡수를 위해
돈과 노력을 좀 기울인 점이 없지 않겠지만
편성된 작품들의 품질이 정말 대단했달까?
일본색이 짙다못해 일본에서만 방송될 수 있을 법한 <오토기 조시>,
작품성 위주라서 대중성은 확실히 약한 <윈디테일즈>, <어벤져>,
유럽식 화풍을 시도한 <마법소녀 아르스>,
블록버스터 명품 애니메이션 <몬테크리스토>,
소년팬을 겨냥한 <세이버 마리오넷J>, <마법냐옹이 타루토>,
그리고
소. 녀. 팬.들을 위한 초특급 서비스
<오늘부터 마왕!>
소.녀.팬.을 위한 작품이다.
왼쪽부터 군터, 콘래드, 유리, 볼프람, 그웬델
생긴것부터 초특급 꽃미남들이다. 종류도 가지가지.
야들야들 꽃청년부터
젠틀한 꽃신사,
야시시 꽃소년,
터프 꽃미남....
온갖 종류의 꽃들은 다 모아놓고 이 이야기가
대놓고 판타지란다.
이야기는 늘 그렇듯 평범한 아이가 평범하지 않은 세계로 빠져들어서
그 세계에서 가장 안'평범'한 사람으로 대접받는다는 스토리.
유리는 어느날 마계로 날아가 그곳에서 마왕 대접을 받게 된다.
그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
왜냐하면 유리는 검은 머리에 검은눈동자(;;)를 가졌기 때문에.
이처럼 <오늘부터 마왕>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고정관념을
뒤집어 제시하면서 생기는 웃음을 컨셉으로 삼는
유쾌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대충 이런 식이다.
어머니를 모욕하는 볼프람의 뺨을 때린 유리는
그 세계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프로포즈하는 방식이
'상대의 뺨을 때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고
결국 유리와 볼프람은 약혼하게 된다.
물론 유리도, 볼프람도 남자다.
하지만 군터는 그 장면에서 이렇게 말한다.
'뭐 그다지.. 드문 일도 아니..지요....'라고.
또 이 세계에서 상어는 채식동물이고,
팬더는 모래사막 한가운데서 개미지옥을 치고 지나가는 동물을집어 삼킨다.
해적은 교복풍의 세일러복을 즐겨입고...
여하간 뒤집기 재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거기에 지나치게 화려한 성우진의 기용으로 인해 귀가 즐거운 것도
하나의 보너스랄까?
유리역의 강수진님과 볼프람역의 승준님이 커플링이 되는것도(;;;)
대놓고 유리에게 사모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구자형님의 목소리도(;;;)
실로 녹음 현장의 분위기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제 12회까지 진행된 이야기이기에 아직은 단발성이지만
총 39회동안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무척 기대된다.
주제곡은 보너스!
(노래는 정말 ... 못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