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6일 토요일

43+7/07/16 태어나고 기르고 죽고...

제주 내려와서 닭을 키우기 시작한지 3개월 남짓. 암탉, 수탉, 오골계, 칠면조 섞어서 닭장 안에 16마리를 넣어 놓고 계란을 낳으라고 지속적인 협박을 한 끝에 오늘 드디어 3개의 초란을 얻었다. 복날까지 계란을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 했더니 알아 들었는지 어쩐지 초복 전날 계란을 내놓은 센스하며.


제주도 흙이 묻어 있어서 거뭇거뭇한데 사실 작고 예쁜 토종 달걀이다. 일반 닭도 초란은 꽤나 작은 편인데 토종닭이 낳은 알이라서 메추리 알보다 살짝 큰 정도다. 생각보다 많이 작다. 먹기에 미안할 정도. 


그리고 오늘은 토마토 하나와 가지까지 수확할 수 있었다. 사실 제주 내려와서는 거의 처음 해보는 텃밭 농사라 여러가지를 심었지만 경험치로 만족할 수 밖에 없는 수준인데 그래도 뭔가 열리고 또 거둘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곧 우리 텃밭은 대대적으로 개보수를 할 예정이다. 저 정도까지 자란 가지를 수확 했다는 게 어디인가 싶다. 


요즘 식구들이 절반이나 출타중인 관계로 음식을 간단하게 해먹는 중인데 오늘 점심은 닭장에서 거둔 초란과 텃밭의 토마토, 그리고 직접 만들어 숙성한 비빔장을 얹은 비빔면과 마트에서 사온 군만두다. 서귀포에 온 뒤로는 거의 자연식을 하면서 살지만 가끔은 라면이나 인스턴트 만두도 먹는다. 국물이 있는 면이든 비빔면이든 라면의 유혹은 피하기 힘들다. 먹고 싶을 땐 먹는게 쓸데 없는 음식 스트레스를 안받는 방법이다. 

+  저녁엔 서귀포에 나가서 변칙 개봉 중인 <부산행>을 봤다. 영화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는 클리셰 범벅인데 묘하게 흥미롭다. 연상호 감독은 처음으로 실사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이지만 근래 어떤 감독보다도 장면 배치와 리듬 조절이 능란하다. 아무래도 여름 블록버스터라면 무엇보다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 힘이 관건인데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충분히 합격점을 줄만하다. 심지어 1시간 58분에 달하는 적지 않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엔딩 크레딧이 뜨자마자 관객들이 영화가 더 진행되기를 원하는 듯한 아쉬운 탄식을 뱉을 정도였으니 몰입감도 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것이 없으면 기존에 있던 것을 제대로 나열하면 된다. 그런 면에서 연상호 감독은 충분히 영리했고 조만간 <부산행>의 전편 격인 <서울역>이 개봉되면 연상호 특유의 냄새가 <부산행>에서 많이 희석되었다는 지적 또한 어느 정도 상쇄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 영화가 정식으로 개봉 된 것도 아닌데 더 이상 이야기하면 너무 많은 내용을 미리니름하게 되니 <부산행>에 대한 이야기는 이만 참는다.

+ 아이를 낳아 본 것도 아닌데 아버지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대충 간접 체험. 현실이나 영화에서나. 

+ 마동석 최고.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