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1일 토요일

<업> 봤습니다 & etc (스포일러 만땅)

1. 아무리 해도 울적함을 벗어날 수 없는 여름날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햇살은 짱짱하게 뜨거운데 왜 가슴엔 먹구름이 가득한지 모르겠습니다. 등짝에 곰이라도 올라 앉은건지, 가슴에 백만톤의 추가 매달려 있는건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냥 이 기분에 이 노래가 어울리는 것 같아서 걸었습니다. . 듀스.. 사랑두려움

 

2. 픽사의 열번째 작품 <업 UP>을 봤습니다. 그냥 <업>이라고 쓰니까 강수연이 나왔던 한국영화 <업>이 자꾸 생각나서... ^^;


휴... 한숨만 나옵니다. 영화가 지나치게 좋으면 주절거리기 이전에 우선적으로 한숨을 쉬게 되는 버릇이 있습니다.


어떤 문장을 쓰더라도 영화를 보고 나온 감상을 능가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인거지요.


이 영화, 아마 나이가 한 5살만 어렸을때 봤더라도 그냥 그럭저럭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에 머물렀을지 모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영화를 보고 충분히 즐기고 느낄만한 그런 나이가 되었다고는 것이고, 이 영화가 나이든 사람이 좋아할 요소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결국 제가 나이들었다는걸 시인하게 되는 것이지요... 휴....;;;;;;;;;;;;

픽사의 스토리 부서는 대체 어떤 두뇌들이 모여있길래 이토록 참신한 스토리를 끝도 없이 내놓을 수 있는 걸까요?

게다가 그것들이 그저 재기발랄함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간 감정의 심층부까지 파고 들 수 있다는건 그들의 작품 이상으로

경이롭습니다. 이쯤 됐으면 초심을 잃을법도 한데 그렇게 되기는 커녕 한층 성숙한 작품을 내놓고 있으니 한때나마 영화,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싶었던 사람의 입장에서는 부럽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무언극으로 진행되는 초반 10분 동안에 한 사람의 70년 인생을 압축하는 솜씨는

그들의 전작 <라따뚜이>에서 1분만에 진정한 고향의 맛을 설명하던 그 장면에서 한층 진일보한 것입니다.

영화 시작한지 5분, 10분만에 이미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들이 줄을 서는 것을 보면 그건 보통 능력이 아닌겁니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진행되는 내내 관객의 선입견을 뒤집습니다.

 

기대감이 컸기 때문에 사전에 어떤 정보성 기사나 리뷰를 보지 않을려고 노력했고, 제가 짐작할 수 있었던 건

'괴팍한 노인네 하나가 지겨운 도시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풍선여행을 한다'라는 정도였습니다. (그것도 정보가 아니라 짐작이었던거죠)

 

그런데 칼 프레드릭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노인네는 이유없이 심술을 부리는 괴팍한 노인네도 아니었고,

도시를 떠나는 이유도 제가 생각한 그런게 전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여행의 과정은 말도 안되게 생략되어 있습니다.

풍선을 달고 하늘로 떠오르자마자 5분도 안되서 목적지인 남아메리카 '파라다이스' 폭포에 도착하고 말죠.

가는 과정의 어려움이라고는 돌풍에 휘말린것 한번 밖에 없습니다.

대체 어쩌자고, 대부분의 영화에서 할애할법한 '과정'의 어려움을 생략해버린걸까요?

놀랍게도 진정한 주인공의 어려움은 북아메리카에서 남아메리카에서 가는 동안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로 삼았던 폭포의 건너편 절벽에 도착한 탓에, 눈앞에 보이는 저편 절벽까지 걸어가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벌어집니다.

더불어 남아메리카까지는 타고 날아갔던 집이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는 주인공의 진로를 방해하는 거대한 짐으로 변해버립니다.

그후로 주인공 할아버지는 영화의 절반 가까이 풍선달린 집을 짊어지고(!) 다니게 되니까요

 

행복의 원천이라 여겼던 나의 집이 벗어날 수도 없고, 내버릴 수도 없는 인생의 짐이 된다는 것, 뭔가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누군가는 작년에 많은 이를 괴롭혔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이야기하더군요. ㅋㅋㅋ)

 

곁가지 식구로 딸려온 애와 새와 개는 물론이고 평생을 살았던 집까지 지켜야 하는 할아버지는 인생 말년에 새로운 고민에

처하게 됩니다. 결국 모든걸 지킬수는 없게 되자 할아버지는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집으로 대변되는, 일생 동안 지켜왔던 가치만을 고수할 것인가, 그것을 버리게 되는 한이 있어도 새로운 가치에 지켜갈 것인가하는

것이죠. 누구에게나 쉬운 문제는 절대 아닙니다.

 

이쯤되니까 왠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생각나더군요.

특히 왠지 어처구니 없는 공중전투까지 펼쳐질땐 이 영화가 적당히 하야오 세계관을 빌려오지 않았나 싶더군요.

물론 표절은 절대 아닙니다. 영감을 주고 받았겠지요.

 

돌풍속에서도 접시 하나 버리지 않기 위해 애쓰던 할아버지가 제 손으로 오래된 가구와 집안 살림을 다 내버리고,

결국 '집'까지 버리게 되었을때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을까요?

자연스럽게 주인공 못지않은 아쉬움을 느껴버린 당신은 이미 나이가 든겁니다. (ㅋㅋㅋ)

 

어쨌거나 그렇게 누구는 돌아가고, 누구는 마무리를 짓는 장면에서 딱 감독이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그리고자 했는지 감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애니메이션이 단순 모험 활극 수준을 훨씬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이고

픽사의 명작 리스트에 넣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 된거죠.

 

<업 UP>은 2D 자막판과 3D 더빙판으로 상영되고 있습니다. 3D 더빙판을 볼 수 없는 것이 많이 아쉽지만

이순재 할아버지의 더빙도 상당히 잘 빠져나왔다고 하니 3D 더빙판으로 한 번 더 보려고 합니다. DVD로 나오면 꼭 소장할 생각이구요.

 

픽사는... 정말... 1년에 한번씩 일해보고 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나쁜 회사입니다. (ㅠ.ㅠ)

 

3. 트위터 시작 4일만에 26명을 팔로잉하고, 27명의 팔로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쪽 재미가 만만치 않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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