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31일 월요일

duel... S.Cry.Ed

스크라이드(S.CRY.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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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熱血)과 근성(根性). 흔히 곤조라고 불리우는 것들. 보통 무언가에 미친듯이 혼을 불태우는 인물에게 붙여주는 칭호가 이런 것들이다. 이렇게 오로지 열혈과 근성으로 자기가 가진 신념 - 옳은 것이든 아니든 - 하나를 위해 인생을 밀어붙이는 주인공들은 주로 70년대에 만들어진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극도의 과장된 모션, 그리고 괴성과 함께.

 

하지만 그래도 보는 순간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함께 끓어오르는 감정을 느낄 수 있지 않았던가? 그 시대가 과연 그런 것을 원했었는지 그때는 너무 어렸었기 때문에 알 수 없지만, 유난히도 그 당시의 거의 모든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은 그렇게 움직였다는 생각이 든다. <스크라이드>. 2001년 후반기에 TV TOKYO에서 방송된 26부작의 이 애니메이션은 오랜만에 열혈과 근성에 불타는 맹목 청년들을 데리고 돌아온 시리즈이다. 물론 같은 회사에서 만들어진 <용자왕 가오가이거>에서 비슷한 것을 목도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그것보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되어진, 그래서 결과적으로 70년대 청년들에 거의 근접하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스크라이드>라고 볼 수 있다. - 그것은 <용자왕 가오가이거>에서 회당 연출을 맡았었다고 하는 감독 타니구치 고로의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스크라이드>의 두 축을 이루고 있는 주인공 카즈마와 류호도 위에서 말한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다. 차이가 있다면 한명은 불한당에 깡패이고 믿는 것은 주먹뿐인 보잘것 없는 인물이고, 한명은 미남에 고결한 집안에서 태어난 자제라는 것. 두사람에게는 각각 나름의 얼터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공통점밖에 없다. - 얼터 능력은 설명하기 쉽지 않지만 어쨌든 주변 사물을 분자상태로 분해해서 자기가 원하는 모양으로 재결합하는 초능력이라고 한다. 이야기는 1회부터 26회까지 줄기차게 만나기만 하면 결투를 해대는 두 사람을 축으로 하면서, 또 그 뒤에 깔려진 더 큰 세력의 그늘을 다루고 있다.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는 과연 26회에 완결이 될 수 있을까 싶을정도로 빠르고 복잡하게 전개되지만, 실상 13회 이후로는 별로 중요한 이야기가 없어 다소 실망스럽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다. 이야기를 더 파고들어가보면 그 속에는 서로 다른 계급간의 부조화와 충돌,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 버젓이 존재하는 현재 사회에 대한 비유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그속에서 새로운 선각자가 우매한 민중을 이끌어간다는 다소 선동적인 설정이 보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것이 또한 '목적성'을 띄고 그렇게 그려졌다고 보기엔 그 힘이 너무나 미미하기 때문에 그저 배경 설정으로 보고 넘어가는 것도 무리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점에서 보면 같은 감독의 전작 <무한의 리바이어스>가 오히려 더 심각한 태도로 현존하는 일본 사회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다루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각설하고, 중요한것은 왜 두 주인공이 그렇게 열심히 움직였는가하는 것이다. 문제는 둘다 각자가 가진 신념이, 각자 살아가는 토대였기 때문이었다고 보인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가 원하는 일과 목표를 향해서 일평생 혼을 불태운다는 것은 무척 가치 일로 생각되지만, 또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쉽지는 않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세파에 지치고, 밀려가다보면 굳이 뭣하러 그렇게 힘들게 살아야되나 하는 생각이 먼저 앞서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처럼 산다면야 미친놈 소리 듣기 딱좋겠지만 그 반만이라도 따라하면서 열심히 살고 싶다는 것은 나만의 소망일까? 21세기에 열혈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열혈을 바라고, 열혈의 불씨를 품어야만 적어도 손톱만큼, 아니면 그보다 조금 더이상이라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룰수 있을 것은 30년 전이나 지금이 별로 다를 것이 없겠다. 그저...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든 생각은 열심히 움직여야겠다는 것이었다. 또하나 더 있다면, 여학우들이 보기엔 별로 재미없을 작품이지만 - 결코 성차별의도는 없다 - 동인지 소재로는 더없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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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이 싸우는 두 사람. 왼쪽이 류호, 오른쪽이 카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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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2년전에 다운받아보고 쓴 글입니다. 이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디자인을 맡은 히라이 히사시는 <무한의 리바이어스>, <스크라이드>를 거쳐 <기동전사 건담 SEED>까지 끝내고 2000년대 들어 최고로 각광받는 캐릭터 디자이너가 된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최근들어 개성있으면서도, 거부감없이 무난한 두가지 성격을 지닌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해내는 디자이너가 별로 보이지 않기 때문인듯도 합니다. 게다가 히라이 히사시 이 양반은 <무한의 리바이어스>때도 그랬고, 한꺼번에 수십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뭐 그것도 능력이겠지만, 어쩐지 갈수록 같은 얼굴에 가발만 바꿔놓은 듯한 느낌이 나는것도 아니라고는 못하겠네요. 그래도 <스크라이드>때까지는 정말 참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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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포스트가 뜨문 뜨문 올라오고 있지요. 개인적인 일로 바쁘기도 했고, 얼마전에 본 영화 <하류인생>의 포스트가 절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 대한 나름대로 정당한 평가를 내리고 싶어서 글을 쓰고는 있는데 신경을 많이 쓰다보니까 진척 속도가 무진장 더딥니다. 쉽지가 않아요. 뭐 조만간에 올라오긴 하겠지요. 중도에 포기하진 않을테니까...(정말이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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