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 7일 월요일

evolution... digi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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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디지몬 어드벤쳐> 한국 첫방송때 작성한 글

 

<포켓몬스터> 열풍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또 다른 한무리의 몬스터들이 안방극장에 몰려왔다. 이름하야 <디지몬 어드벤쳐>. 예상했던 바와 같이 이미 완구점과 팬시상품점에는 이 몬스터들을 찾는 아이들이 엄청나게 늘어났고, 제빵회사는 포켓몬 빵을 접고 후속타로 디지몬 빵을 내어놓았다. 그리고 발빠르게 디지몬 캐릭터를 이용한 운동화를 비롯해 아이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각종 제품들이 줄지어 발매될 예정이다. <디지몬 어드벤쳐>는매주 월, 화요일 오후 6시에 KBS2에서 방송되고 있다.

  이미 <포켓몬스터>와 <구슬동자>에 대한 글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러한 애니메이션들이 동심과 상술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산물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재론할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똑같은 전략을 반복하며 만들어낸 이 애니메이션이 전작들과 똑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어쩌면 더욱 치밀한 벤치마킹의 결과였을 가능성이 농후한 <디지몬 어드벤쳐>는 일본에서의 만만치 않은 성공을 바탕으로 미국 상륙에 도전했고, 역시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기록했다. 워너 브러더스 계열의 카툰 네트워크를 통한 고정 편성에서 팬층을 확보한 후, 20세기 폭스를 통해 2000년 10월 6일 전국 1800개 이상의 극장에서 <Digimon : the movie>가 개봉되어 천만달러 이상의 수익을 기록했다.

  <디지몬 어드벤쳐>는 그 태생이 <포켓몬스터>와 동일하다. 닌텐도의 게임에서 비롯된 <포켓몬스터>가 폭풍같은 인기를 누리며 천문학적인 수입원이 되는 것을 본 경쟁사 반다이가 유사한 내용의 게임으로 만들어낸 것이 바로 <디지몬 어드벤쳐> 즉 다시 말하면 '디지탈 몬스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냥 똑같은 방식으로 복제한다면 어느 누가 디지몬을 좋아할 수 있었을까? <포켓몬스터>의 아류임이 분명함에도 변별력을 갖지 못해 실패한 <사차원탐정 똘비>에 비해 <디지몬 어드벤쳐>에는 분명하게 포켓몬과 다른 점이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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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몬 어드벤쳐>의 발매는 <포켓몬스터>에 의해 촉발되었을 망정 진정한 기원은 반다이의 그 유명한 게임 '다마고치'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것도 단순히 키우는 다마고치에서 좀더 발전된, 사육해서 싸우는 '다마고치'가 바로 '디지탈 몬스터'였다. 게다가 싸우지 않으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전투 본능이 포켓몬스터에 비해 훨씬 증대된 버전이기도 했다. 또한 성장의 단계가 포켓몬스터처럼 단순하지 않다. 이것은 같은 초기 유형을 가진 디지털 몬스터라도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며 유년기, 성장기, 성숙기, 완전체의 네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훨씬 복잡하다. (아울러 캐릭터 상품도 다양한 변종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정도만해도 포켓몬스터의 한단계 업버전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지만 이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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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켓몬스터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자연계의 실재하는 생물들과 매우 유사한 모습으로 창조된 캐릭터들이었다. 디지털 몬스터도 이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그러나 디지털 몬스터는 진화를 거듭할수록 어떤 것은 기계로봇같은 모습이 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공룡, 또 어떤 것은 요정이나 심지어 외계인처럼 변하기도 하는 등 그 모양새가 천차만별이다. 더불어 완전체에 이르면 이미 애완용 몬스터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흉칙한(?) 전투생물이 되어버린다. 한마디로 예뻐서 사랑받겠다는 생각보다는 아이들의 좀 더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자는 발상이었던 듯하다.

  게임에서 이러한 전환이 이루어졌다면 애니메이션판에서는 어떠한 차이점이 있을까? 그것은 무려 7명이 등장하는 집단 주인공 체제의 채택이었다. 나이와 성별, 신체조건을 고루 섞어놓은 <디지몬 어드벤쳐>는 주인공이 집단적으로 등장하는 애니메이션들의 장점이 그러하듯 어느 누구를 좋아해도 무방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게다가 '로켓단'이라는 멍청하고 코믹한 적이 등장하는 <포켓몬스터>에 비해 <디지몬 어드벤쳐>에는 좀 더 명확하게 선을 그어 놓은 악의 디지몬들이 등장한다. 더 더욱 전투가 필요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찌보면 <포켓몬스터>는 그나마 순진한 애니메이션이었다고나 할까? <디지몬 어드벤쳐>는 아예 그 궤도가 다르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작품의 배경 공간 또한 <포켓몬스터>의 유사 자연 세계와 달리 <디지몬 어드벤쳐>는 컴퓨터 네트워크 내부에 존재하는 가상 세계를 설정하고 있다. '디지탈'이라는 단어에서부터 뭔가 이것은 좀 더 현대적이고 세련된 것이라는 뉘앙스를 팍팍 풍겨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결국 <디지몬 어드벤쳐>는 <포켓몬스터>의 단순함에 싫증난 아이들을 새로운 소구대상으로 삼고, 그보다 좀 더 복잡하고 까다로운 설정을 자신있게 도입한 점이 성공의 단초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디지몬 어드벤쳐>의 인기가 한창 치솟고 있는 요즘 이에 뒤질세라 <포켓몬스터>도 새로운 극장판 제작을 발표하면서 인기 유지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과연 이 몬스터 제작 열풍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한국형 포켓몬이나 디지몬이 나오는 것을 바라지는 않지만, 과연 효과적인 벤치마킹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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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 와서 읽어보면 지나치게 진지한 태도로 <디지몬 어드벤쳐>를 다뤘던 것이 아닌가하는 감이 들기도 하는 글이다. 그러나 7세 이하의 유아용 애니메이션 시장이 유일한 가능성을 가진 시장이라고 줄곧 주장하면서도 그 아이들에게 소구될수 있는 적절한 애니메이션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포켓몬스터>와 그 후에 나온 <디지몬 어드벤쳐>시리즈는 충분히 연구 대상이 될 만한 가치가 있다. 이 두 가지의 몬스터 시리즈 이후 일본에서는 물론 한국에서도 숱한 아류 몬스터물이 나왔음에도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때문이었을까? 왜 <디지몬 어드벤쳐>는 무려 4년에 걸쳐 시리즈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꾸준한 인기를 모을 수 있었을까? <디지몬 어드벤쳐> 시리즈가 명백하게 <포켓몬스터>를 벤치마킹 했고 <포켓몬스터>보다 센세이셔널한 면에서 덜했음에도 훨씬 더 많은 수익을 파생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연구한 자료를 난 한번도 본 적이 없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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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디지몬 : 디지몬 어드벤쳐 02>는 <디지몬 어드벤쳐>에 곧장 이어진 두번째 시리즈였다. 후속편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전편과의 연계성을 놓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전편의 주인공 '선택받은 아이들'이었던 캐릭터들을 카메오로 출연시키는 동시에 전편에서 그닥 중요하지 않았던 주인공 신태일의 여동생 신나리를 아예 이번엔 시리즈의 주인공들 중 하나로 편입시키는 방법을 동원했다. 결과적으로 <디지몬 어드벤쳐>를 보았던 아이들이 <디지몬..>을 떠날만큼 나이를 먹자 이번엔 그 동생뻘인 아이들을 타겟으로 공략하자는 아이디어는 곧장 시리즈의 성공을 보장하는 열쇠로 이어졌던 것이다.

 

'형이 좋아했던, 오빠가 좋아했던 그것을 동생들도 같이 좋아할 수 있게!'

 

흔히 속편의 생리라고 말할 수 있는 '더 크게, 더 복잡하게, 더 많이'의 법칙은 여기에서도 예외없이 적용되었다. 다소 어색하고 어설프게 보였던 1편의 몬스터들에 비해 깔끔하고 귀엽게 정돈된 몬스터들도 흥행에 도움이 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스토리면에서도 훨씬 복잡한 갈등 구조를 내재하게끔 구성해놓았다. '적'도 단순한 그냥 '적'이 아니었고, '악'도 '절대악'은 아니었고. - 형과 동생이 같이 보는데 이미 눈이 높아진 형의 기대치도 만족 시켜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해서 <포켓몬스터>가 해년마다 같은 패턴을 반복하며 제자리 걸음을 하는 동안 <디지몬 어드벤쳐>는 진화를 거듭했고 최근 시리즈인 <디지몬 프론티어>에 오면 아이들이 직접 공격형 디지몬으로 진화되는 퓨젼 시스템을 도입하기에 이른다. 한때는 경쟁 관계였던 <포켓몬스터>와 <디지몬 어드벤쳐>는 어느새 친숙함과 새로움을 무기로 아이들의 두가지 입맛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공생 관계로 변했다. 2002년 이후 새로운 <디지몬 어드벤쳐>시리즈는 나오지 않고 있지만, 이미 성공의 열쇠를 쥐어본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가 또 다른 무엇을 만들어내려고 준비중인지는 아무도 섣불리 짐작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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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방가방가 햄토리>시리즈도 두가지 몬스터 시리즈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라 말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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