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 10일 목요일

초절정 허무개그의 결정체! <전설의 마법 쿠루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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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작 <전설의 마법 쿠루쿠루>에는 압도적인 작화도, 심도 있는 스토리도 없다. 눈이 번쩍 뜨일만한 매력적인 캐릭터도 없다. 보통의 애니메이션이 내세울만한 특징들을 모조리 쓰레기통에 쳐박아버린 이 애니메이션이 뜻밖에도 놀라운 흡인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믿겠는가?

 

MSX 컴퓨터 시절의 YS부터 PS2의 파이널판타지 시리즈까지, 일본식 롤플레잉 게임을 한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라면 <..쿠루쿠루>의 애니메이션 구성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 반대라면 문제가 있지만. 칼 한자루를 손에 들고 종종종 걸어다니면서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그러는 동안 HP와 MP를 쌓아서 레벨을 올리고 최종 보스를 만날때까지 여행을 계속하는 일본식 RPG 시스템은 그 지리한 게임성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상당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나 그래픽이 화려하지 못했던 2D 게임 시절에는 특별한 눈요기가 될만한 동영상도 없었기 때문에 RPG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지난한 무한 반복 작업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몬스터가 나타나거나, 새로운 마법을 익히게 되면 화면이 바뀌면서 하단에 자막창이 뜨고 그에 대한 설명이 등장한다거나, 레벨이 오르면 '레벨이 올랐습니다'같은 친절한 설명이 나오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이 애니메이션은 중간 중간에 느닷없이 '마법 설명'이 나오거나, 그래프를 동원한 주인공의 남은 체력과 마법력 제시, 몬스터에 대한 설명 또는 '레벨이 올랐다'같은 해설자의 목소리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RPG 시스템을 도입한 진지한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하면 오산. 이 애니메이션은 분명히 '개그'물이었다. 그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어이없는 '허무'개그의 연속. 홀랑 벗고 나와서 시도때도 없이 모두가 싫어하는 북북춤을 춰대는 북북노인을 비롯하여, 한가지 마법도 제대로 실행하는 법이 없는 실수투성이 마법사 코코리, 잔머리와 비겁합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용사 니케 등 제정신인 인물들이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게다가 혼자 개그하고 혼자 '썰렁하지?'를 외쳐대는 썰렁요정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 애니메이션은 심지어 자학적이기까지 했다. (-.-)

 

이런 저런 요소들을 돌이켜 보면 <..쿠루쿠루>는 평이한 보통의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매니아성으로 똘똘뭉친, 특정인들만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그런 괴이한 작품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연재가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 애니화된 관계로 TV시리즈는 1기와 2기로 나뉘어 제작되었는데 1기의 끝은 실로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니케와 코코리의 여행은 부활한 마왕 기리를 제거하고 미그미족의 평화를 되찾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러브러브 모드에 빠진 니케와 코코리는 마왕 기리를 없애지 않았다.(!!)

 

'여기서 기리 마왕을 없애면 우리 여행이 끝나는거야?'

 

'아잉, 그럼 용사님하고 더 이상 같이 여행을 할 수 없는거에요?'

 

'음.. 그럼 마왕을 없애지 말지, 뭐.'

 

정확하지는 않으나 대충 이런 대화 끝에 왕국의 평화는 커녕,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마왕을 그대로 남겨두는 만행을 저지르고 1기는 끝났던 것이다. 그리고 2기 시리즈가 이어졌다. 물론 중간에 6년이란 시간이 필요하긴 했지만. 2000년에 방송된 2기 시리즈 역시 코믹스가 완결되지 않은 관계로 애니메이션 먼저 미완결인 상태로 종방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2기는 1기때보다 난데없는 단편적 개그를 줄이고 원작 코믹스의 스토리에 충실하게 제작되는 한편, 훨씬 더 폐인냄새가 물씬나는 매니아적 패러디를 도입하면서 전작 못지 않은 높은 인기를 끌었다. 한 편 전체가 뮤지컬로 제작되어 국내 더빙 성우들까지 모두 노래를 부르며 더빙해야 했던 에피소드와 구간반복 마법에 걸려 끝없이 계속 아이캐치가 나와야했던 에피소드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이다. 1기 시리즈는 투니버스와 MBC에서 방송되었고, 2기 시리즈는 투니버스를 통해 2002년에 초방된이후 여러 차례 재방송된 바 있다. 단행본은 아직도 계속 발행되고 있으니, 다시 한번 니케와 코코리가 여행에 동참할 수 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과연 기리 마왕을 무찌를 수는 있는걸까?)

  

개인적으로 정미숙님의 코코리, 임은정님의 니케, 이인성님의 북북노인, 그리고 성선녀님의 시종일관 무덤덤했던 해설은 일본판보다 훨씬 인상적이었다.

 

 

         

 

 

 

2기엔딩 - 서쪽하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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