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 22일 화요일

'령'고괴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스포일러 및 네타바레 경고!!!!

 

'정신 똑바로 차려. 안그러면 미리 알게 될거야.'

 

'기억하지마. 읽고 나서 영화 볼 생각이라면.'

 

공포 영화를 만드는 일은 한편으론 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꽤나 어려운 일이다. 어떤 이는 극장에서 공포 영화를 보는 행위가, 롤러 코스터를 타고 비명을 내지르는 것처럼 꽤나 자학적인 쾌감을 느끼게 해준다고 말하기도 했다. 뒤집어 말하면 롤러 코스터를 절대 못타는 사람의 변명이나 공포 영화를 보기 싫어하는 사람이 내세우는 이유가 비슷하다는 이야기다.

 

만드는 사람은 그러한 쾌락을 제공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어떤 지점에서 정확하게 관객을 놀래키고, 움찔하게 만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공포에 떨게 만들어서 영화를 다본 후에도 후유증에 시달리게 만들어야 하는지 정확하게 계산하고 들어가야 된다. 그러나 이것은 뒤집어 보면 놀래킬 지점과 무섭게 만들 지점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는 것이고, 심지어 공식화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미 오래전에 <스크림>시리즈를 통해 실컷 비틀기 된 것처럼, 공포 영화의 그런 공식들은 너무나 전형화되어 있어서 장르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는 전혀 먹혀들지 않을만큼 일반화되어 버린 것도 사실이다.

 

쉽지만 어렵다고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공식에 정확하게 충실하기만 하면 엔간한 공포 영화는 뚝딱 나오기 때문에 분명 어렵지 않지만, 이미 관객들이 그 공식을 거의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 이상이 없다면 너무 뻔한 이야기가 되어버리지 않는가? 고로 '뻔한' 공식을 '뻔하지 않게' 보이려면 지난한 심사숙고가 필요하고 그래서 어려워진다는 거다.

 

<령>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공포 영화의 공식에 매우 충실하게 만들어졌다. 적당한 지점에서 놀래키고, 귀신이 나와야할데서 나오고, 비밀이 풀려야 할 지점에서 풀리고, 그 비밀을 뒤집기 위한 반전도 제 위치에 놓여져 있다. 마치 아주 잘 정돈된 장식장을 보는 것처럼 있어야할 것이 그 자리에 다 있는데 문제는 무언가 상당히 심심하다. 넣어야 할 양념은 제대로 다 넣었는데 깊은 맛이 없는거다.

 

민지원(김하늘)의 엄마(김해숙)은 처음부터 너무 수상쩍다. 남편을 잃은 뒤로 정신이상이 되었다고 그냥 믿고 넘어 갈 수가 없는 것은 이 영화가 '공포영화'라는 걸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수인(남상미)는 지나치게 착하게 그려져있다. 민지원이 왕따사건을 주도한 성격 나쁜 여고생이었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밝히고 나면, 한수인이 무슨 과정을 겪든 희생자가 되었을 거라는 사실을 짐작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화를 보면서 뒷이야기를 쉽게 짐작할 수 있게 만들어버린 것은 분명 실수이다. 그러나 더 나쁜 실수는 그게 아니다. 짐작이 가능했다고 해서 영화가 못쓰게 되어버리지는 않는다. 이미 작년 <장화, 홍련>을 보면서 수연이가 죽었을거라는 걸 미리 알아챈 사람이 어디 한 둘이었겠는가? 그러나 <장화, 홍련>이 새롭지 않으면서도 꽤나 무서웠던건 이야기를 한바퀴 휘돌린 고난이도의 시나리오와 적절한 장면 배치를 통한 깜짝쇼가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었다.

 

<령>은 다시 말하지만 지나치게 평이하다. 귀신이 나와야 할 장소에서 당연히 나와준다. 그것도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주온>의 귀신도 천연덕스럽게 기어 나오지만 그게 무서웠던건 나와야 할 지점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타이밍상 들어가줘야 할 지점에서 들어가지 않는 연출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주온>은 등장대신 퇴장 지점에 대한 공식을 어기면서 공포감을 만들어냈었다. 하지만 <령>의 귀신은 나올 지점과 들어갈 지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다소 어처구니 없게도 귀신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깜짝쇼를 벌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놀라지 않게 되지만, 오히려 관객이 놀라는 지점은 연출 때문도, 연기 때문도 아닌 과도한 음향 효과를 넣은 지점일 뿐이다. 소리때문에 괜시리 놀라며 불쾌감을 느끼는 어리숙한 연출이 반복되고 만것이다.

 

이 영화는 조금만 더 잘 만들어냈더라면 - 물론 이런 이야기는 해봤자이겠지만 - <여고괴담>이 그랬던 것처럼 잘 만들어진 심리 공포물에 사회성까지 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교과서' 공부만 열심히 하고 응용력은 전혀 키우지 않았던 것 같은 연출 탓에 매우 시시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미저리>를 연상케 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무섭기는 커녕 피식하고 웃음이 나오거나, '그랬겠지'하고 말게 되는 것도 그런 탓이다.

 

<'령'고괴담>이라는 비아냥을 쓴 이유는 이 영화의 전체적인 주제를 파악하기 위해 2시간을 지켜보고 있느니 차라리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의 오프닝씬 5분을 보는게 훨씬 낫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