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4일 토요일

<하나와앨리스>에 대한 생각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랜만에 만나는 이와이 슈운지의 신작 <하나와 앨리스>. 감독의 이름부터 보고 영화를 보러 들어가게 되는 그닥 흔치 않은 케이스 중 하나가 이와이 슈운지다. <러브레터> 한 편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던 건 분명하지만 <러브레터>말고도 꽤나 여러가지 다른 면모를 보인 영화들을 만들어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이와이 슈운지의 색깔은 그런거라고 고착시켜 믿게 만든 영화는 분명 <러브레터>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 그래서인지 극장에 모인 관객의 선입견은 <러브레터>, <4월이야기>, 그리고 바로 이 <하나와 앨리스>로 이어지는 감독의 '예쁜 세상 바라보기'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감을 품었을 것이고, 예상대로 그 기대감을 100% 충족시켜 주고 있으니 별다른 이의를 제기할 관객도 거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숙이 이 영화를 찔러보고 싶은 마음은 분명히 든다. 흔히 '순정만화'적 발상이라고 하는 그런 것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영화의, 드라마의, 뮤직비디오의 한 컷, 한 컷을 정말 예쁘고 귀엽게 찍어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게다가 '순정만화'라는 장르의 특징이 마냥 예쁘고 귀여울 뿐인 그런 것이라는 단정적인 발상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이란 말인가? 이와이 슈운지의 세계와 <하나와 앨리스>라는 영화를 이야기할 때 기존에 모두가 가졌던 여러가지 고정관념을 완전히 제거하고 말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만 모든 이야기를 시작하고 마치는 것은 어쩐지 온당치가 않다는 생각이다.
 
영화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영화에서 감독은 자신이 가진 만화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사람들이 '당신 영화는 만화같아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래요, 나 만화 좋아해요'라고 화답이나 하듯이 말이다. '미즈키'역에서 시작해서 '이시노모리'학원을 지나 '데츠카'고등학교로 진행되는 웃기는 작명 시리즈는 그런 뜻이다. 왜? 미즈키 교코는 <캔디 캔디>의 작가,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사이보그 009>의 작가, 데츠카 오사무는 <아톰>의 작가다. 영화가 만화보다 우월한 깊이를 가진 장르라는 생각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모르지만, 이와이의 영화를 다소 낮춰보는 관점으로 '만화'같다는 평가를 내리는 시선에 대해 이와이는 그것을 부정하기 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들어가는 쪽으로 나아간다.  그것이 그저 재치있는 하나의 작명 센스에 불과하더라도 거기에서부터 '나는 태생이 그러하니 내가 가진 장점도, 내가 가진 단점도 모두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오'라는 자기 긍정적 태도가 엿보이는 것이고 또 이 영화 <하나와 앨리스>의 성격을 거의 전부 결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와 앨리스>는 '순정만화'의 장르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 이와이 슈운지 방식의 '순정만화'가 된다.    

 

그렇다면 이와이 슈운지 작가의 '순정만화'는 그저 화면 가득 벚꽃 휘날리고, 소녀들이 예쁜 웃음을 짓는 그런 귀여운 세상속 이야기이고, 이와이 슈운지는 그것만 잘 그려내는 감독일까? <하나와 앨리스>는 또 다시 그런 단정을 내리기에 충분할만큼 심하게 예쁘고 귀여운 장면들로 꾸려진 영화라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약간이라도 변명아닌 변명을 하기 위해 그 옛날의 <러브레터>로 돌아가보자. <러브레터>의 장점은 그 영화가 이전에 다른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없었던 아기자기하고 예쁜 컷들과 미장센을 가졌던 점에도 있지만, 그보다 놀라웠던 것은 이와이 슈운지만의 독특한 스토리텔링 방식 때문이기도 했다. - 내가 보기에만 그랬던 것일수도 있지만. 영화의 초반 30분이 채 지나기전에 다른 영화라면 끝까지 감추어 두었을만한 비밀들 - 남자 후지이 이츠키는 이미 죽었고, 여주인공 와타나베 히로코와 여자 후지이 이츠키는 쌍둥이처럼 닮은 두 사람이다 - 을 모두 까발리고도 큰 무리없이 두시간을 알차게 꾸려나갔던 영화가 <러브레터>였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을까?

 

<하나와 앨리스>에서도 그런 스토리상의 디테일을 꾸려나가는 이와이 슈운지의 능력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미야모토 선배에게 사상 최고의 구라를 친 하나가 고등학교 만담부에 가입하게 되는 것, 숱한 오디션에서 한 번도 주어진 배역을 소화하지 못한 앨리스가 미야모토를 상대로는 일생 일대의 연기력을 보이면서 거짓말을 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런 상황들을 충분히 뒷받침 해줄 설득력 있는 에피소드의 나열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는 것은 이와이 슈운지가 단순히 예쁘장한 '미장센'들밖에 못만들어내는 그런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화가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은 비록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앨리스의 '발레씬'일테지만, 그보다 훌륭한 명장면으로 꼽고 싶은 장면이 하나가 자신의 거짓말을 선배에게 고백하면서 '똥꼬를 찔리는 아픔'을 겪는 씬인 것은 같은 이유에서이다.  

 

첫영화를 찍은 신인 감독이 아닌, 중견 감독에게서 과도하지 않은 자기 긍정성을 발견하는 것은 오랜 시간 후에 예전보다 많이 성숙해진 옛친구를 만나는 기쁨과도 같다는 생각이다. <하나와 앨리스>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발견의 즐거움은 없었지만, 익숙한 어떤 것이 기억속에서보다 훨씬 성숙하게 농익어 가고 있다는 확인은 충분히 가능했다. 그것만으로도 매우 즐거운 두시간이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