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 23일 목요일

1. 대한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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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재개관한 신건물

 

1. 추억은 방울방울 

대한극장에 대한 기억을 펼치려고 재개관 이전의 사진을 검색해봤지만 역시나 구할 수 없었다. 대한극장 홈페이지에도 가보았으나 역시나 자신들의 역사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듯 단 한장의 과거 이미지도 올려져있지 않았다. 스캐너가 있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사진을 올릴수도 있을텐데 하는 생각에 꽤 아쉽다. 어릴적 내가 살던 초라한 집들도, 아침마다 아버지의 이륜차 뒤에 매달려서 산바람, 강바람을 맞으며 다니던 국민학교도, 대학시절 여유를 즐기던 청년광장도 이제는 없다. 외국에 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줄기차게 32년을 한국땅에서 살면서도 추억의 흔적들은 이렇게 매몰차게 묻혀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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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86년 8월 14일. 대한극장에서 <구니스> 보다
강릉이라는 시골 촌구석에 살면서도 1년에 두번 정도 서울에서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친척들이 거의 모두 서울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지 방문차 엄마를 따라 서울에 와서 근 10일 정도를 묵어 가곤 했는데 그럴때마다 친척 방문에 지치면 한 두번 정도는 극장에 가는 것이 시간을 때우는 좋은 방법이 되었다. 사실 엄마와 나의 서울행은 그 목적 자체가 달랐다고 하는게 정직한 고백이겠다. 나에게 친척 방문은 그냥 핑계였다. 서울에 올라올 날짜가 잡히면 나는 신문을 펴놓고 방문 기간중에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영화 목록을 골랐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엄마를 따라다니다가, 틈을 봐서 자연스럽게 '영화 보고 싶어요'라고 엄마를 꼬드기곤 했다. 그럴 경우 엄마는 내가 영화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못이기는 척 같이 극장에 가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야 서울에 있는 극장에 간다는 것이 무척이나 흥분되고 설레는 일이었지만 엄마에게는 그것 또한 피곤하고 힘든 일이었을거다.  86년 8월 14일, 그런 방식으로 대한극장을 가게 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흥분하고 또 흥분했다. 막 사춘기에 돌입한 소년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만한 모험의 세계가 그 곳에 있었다. 그러나 강릉으로 돌아와야할 날짜에 영화를 보러 가느라 일정이 하루 늦춰졌고, 8월 15일에 있었던 '광복절기념 방학중 예비소집'에 불참한 나는 개학하고 나서 한참을 구박받고 시달려야했다. 영화속 모험 세계가 아무리 험난하다한들 현실보다 어렵지는 않을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 최초의 시기가 그때가 아니었을까한다.     
 
 
3. 무한애정
<구니스>를 본 이후로 '대한극장'은 거의 내 속에 꿈의 극장으로 남게 되었다. 그 곳에서 하는 영화는 무조건 대작이고 흥행작이고 좋은 작품일거라는 근거없는 믿음이 생겨버렸다. 그래서 서울에 무슨 신작 영화가 들어왔다는 소식이 들렸을때, 그것이 대한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화라면 강릉에 들어왔을때도 앞뒤 재지 않고 달려가서 보곤했다. 그렇게 본 영화가 <브로드캐스트뉴스>, <라밤바>, <백투더퓨쳐>, <마지막황제>, <피라미드의 공포>등등이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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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988년 1월 4일. 최초의 외면
시간이 흐르고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 되었지만, 일년에 두번씩 이어지는 서울행은 변함이 없었다. 이때 조금 특이한 것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아버지까지 동행한 우리 네식구 모두가 함께 서울에 올 수 있었다는 것 정도. 줄기찬 친척 방문을 끝낸 우리 네식구는 바야흐로 어떤 영화를 보고 강릉에 갈 것인가를 궁리하게 되었다. 그렇게해서 우리 식구들은 대한극장에 가서 <로보캅>을 보았....
 
 
 
 
을까? 정답은 노.
 
서울에 올라오기 전부터 나와 내동생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밖에 없었다. 그당시에 피카디리 극장에서 상영되던 <탑건>을 보는 것!  나와 동생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 우리 식구는 모두 <탑건>을 보러갔다. 허나 좌석배치가 이상하게 되는 통에 나와 내동생은 객석 중앙의 괜찮은 자리를 구했으나 엄마, 아버지는 따로 멀리 앉게 되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앞에서 만난 엄마, 아버지의 표정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두 분의 자리는 스피커 바로 옆이었던 것이었다. 두시간 내내 전투기 굉음에 시달리느라 사색이 된 두 분의 얼굴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그리하여 애시당초 <로보캅>을 보자고 주장했던 아버지의 불평은 서울을 떠날때까지 이어졌고...
 
5. 2004년 대한극장
올해도 대한극장에서 꽤 여러번 영화를 보았다. <하류인생>, <령>, <스파이더맨2>, <반헬싱>...
모두 같은 친구와 봤는데 볼때마다 하늘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무슨 기현상인지.. (^.^)
 
2004년의 비오는 대한극장에서 이 극장에 대한 추억을 계속 이어갈수 있도록 해준 그  친구에게 감사하며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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